"북극 다 녹기 전에 반지하 셋집이 먼저 잠겨요" [지구용]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작가 인터뷰
지구용 에디터들은 얼마 전 백설공주의 오묘한 표정에 감탄했어요. 찌든 직장인 같기도, 세상만사 초월한 것 같기도 한 얼굴...마치 금동반가사유상 같달까...(아님) 이 백설공주는 '동화 속 나의 친환경 캐릭터 찾기'란 간단한 테스트에 등장하는 일러스트인데요. 문제 10개만 답하면 내 친환경캐를 찾아줘요. 지구용 에디터들은 좀 제각각이었는데 모 에디터는 ‘성실과 태만의 복합체’인 ‘아기 돼지 삼형제’란 판정을 받아서 다같이 껄껄 웃기도 했어요.
뜬금없이 웬 심리테스트냐고요? 출판사 어크로스가 곽재식 작가님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출판 홍보 겸 지구의날(4월 22일) 기념 겸 만든 테스트예요. 이 테스트로 연이 닿아 책을 읽었는데 또 너무너무 좋았던 거예요. 원래 곽작가님 소설 팬인 생강 에디터가 사심을 담아 작가님 인터뷰를 해왔다는 게 본론이에요. 알쓸축잡, 당신이 혹하는 사이, 유퀴즈 등등 방송에서 작가님을 봤던 용사님들도 계실 거예요.
에디터가 생각한 책의 장점은 현실적이란 점이에요. 막연히 기후위기가 나쁘다고 지적하는 대신 ‘기후위기 때문에 반지하 월셋집이 침수된다’고 설명해요. 탄소배출량 증가를 ‘공기 중에 캡사이신을 푼다고 가정했을 때(맵다 매워)’처럼 비유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이 화학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덕인 것 같아요.
문제가 명확해지면 최소한 당장의 대응 방안은 만들 수 있게 되죠. 기후위기가 월셋집을 침수시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뭔지 말예요. 작가님은 이렇게 예를 들어주셨어요. “기후변화가 앞으로도 심해질 건 확실한데, 예전 같으면 기우제밖에 답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기술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날이 더워져서 고랭지배추 농사가 힘들어졌다면 정부가 ‘비가 안 오는데 어쩌냐’며 가만히 있지 말고 더운 날씨에서도 잘 자라는 배추 품종을 구해서 농민들을 지원해야겠죠. 기후위기를 농부들이 일으킨 것도 아니니까요. 정부가 이런 일들을 하도록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압박해야 해요.”
여기서 중요 포인트 하나. 기후위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혀요. 집에 에어컨이 없거나 야외 공사현장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 소규모 농가, 반지하 거주중인 저소득층들처럼요. “더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라 목소리가 전해지기 어렵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책을 읽다가 맘속으로 밑줄 그은 부분 옮겨볼게요.
두번째 장점은 ‘생각의 가지를 뻗도록 도와준다’는 점. 단순하게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야지, 까지만 생각하는 건 의도는 좋지만 정답이 아니거든요. 곽 작가님은 이런 질문을 던지셨어요. “우리가 전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면 어떨까요?” 자연인처럼 산에서 살면서 장작 패서 난방하고, 나물이랑 열매 채집해서 먹고 산다면요. 그럼 자연의 순리대로 살면서 지구도 깨끗해질 것 같은데요.
하지만 곽 작가님은 “한국인 5000만명 중 1000만명만 그렇게 살아도 산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하셨어요. “자연스러운 삶이 개인 차원에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정작 자연 보호와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고요.
실제로 조선시대 말기, 우리 상상과는 달리 민둥산이 너무 많았대요. 나무를 베어다 집 짓고 종이 만들고 방 데우느라고요. 이후 한국전쟁 때문에 나무가 더 줄자 심각성을 깨달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지금의 푸른 산들이 만들어진 거라고.
곽 작가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지금 미세먼지가 심하다는데 1990년대 자료를 보면 그 때가 더 심했다”고요. 한강물도 1970년대엔 지금보다 더러웠고, 산성비나 오존층 파괴 문제도 예전에 더 심했대요.
흔히들 문명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파괴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산업 발전과 소비 증가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맞지만, 그만큼 “신경 쓰고 환경 보호를 실천해서 자연이 되살아나기도 한다”는 말씀. 그러니까 좌절하지 말고 꿋꿋이 지구용사 활동을 계속하면 되겠죠?
책에선 탄소배출, 기후위기, 전기차, 파리협정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 과정을 풀어나가고 난관을 극복한 사람(또는 기술)들이 꼭 등장해요. 예를 들어 기후변화가 문제란 걸 누가 어떻게 연구하다 처음으로 알아냈는지 같은 이야기들요. 곽 작가님 자신도 이런 대목들이 뿌듯하다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설거지하느라 쓴 물이 한강을 오염시키기 전에 재빨리 정화해야 하는데, 이런 환상적인 일을 전국의 물재생센터에서 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더 잘 정화하려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고요.” 그런 대목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든든해지고 용사로서의 자신감(?)도 솟아나고요.
환경에 관심을 가질수록 회의감이 들 때가 있잖아요. 계절마다 새 옷을 사고, 지나치게 자주 고기를 먹고, 쓰레기는 쌓여만 가는 이 시대가 언젠가 끝날 수 있을까 에디터도 상상해보곤 하는데요. “더 나은 세상이 올까요?”란 물음에 곽 작가님은 “지금 같은 시대가 끝날 거라고 88% 정도는 확신한다”고 시원하게 답해주셨어요. “1990년대 초만 해도 30년 후에는 석유가 고갈될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석유가 생산돼요. 오히려 석유 수요가 많이 줄어서 4월엔 ‘마이너스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고요. 100년 전만 해도 커피숍이나 컴퓨터란 걸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흔하고요. 세상은 다 바뀌어요. 앞으로 한 세대쯤 지나면 300년 만에 인구 증가가 끝나고 감소 추세로 접어드는 세계사적인 변화가 나타날 거예요. 완전히 다른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해요.”
한편, 책에는 ‘지금까지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고 이번 기후변화는 그 정도는 아니라서 인간이 멸종할 순 있어도 모든 생물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대목이 있어요. 완전 안심되죠??(^▽^*))) 지구는 괜찮겠지만 우리도 같이 괜찮으려면 많이 고민해보고 제일 필요한 곳에 알맞게 목소리를 내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지구용사들을 위해 추천한 (본인의) 작품은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예요. 혹시 SF소설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면 이 참에 버리고 도전하시길 강력 추천. 분명 SF 소설인데 고달픈 한국 직장인에 대한 완벽한 묘사와 특유의 유머에 반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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