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위기, 조합원은 모른다?..크레인 해체 코앞인데 "잘 되겠죠"

조성준 기자, 방윤영 기자 입력 2022. 5.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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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둔촌주공 사태 부른 욕심과 방심(上)

[편집자주] '둔춘주공' 재건축이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조합과 시공사가 잠깐 기싸움 벌이다 적당히 합의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공사는 한달 이상 중단됐고 시공사는 현장 철수에 들어갔다. 최악의 경우에 공정률 50% 넘긴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고 6000명의 조합원들은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된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리는 1만2000가구의 재건축 공사가 이 지경까지 간 배경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없을까.

"연금으로 월 130만원 이자 내는데.." 조합원도 모르는 둔촌주공
① 조합의 불투명성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2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현장에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내걸린 채 공사가 중단돼 있다. /뉴스1

"지금 한달에 이자만 130만원 내고 있어요...남편과 저는 60대인데 연금으로 이자 메꾸느라 너무 힘듭니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원)

20여년 둔촌주공에서 살다가 2017년 이주한 둔촌주공 재건축사업 조합원 A씨(61)는 이주를 위해 대출한 3억7000만원에 대한 이자만으로도 허리가 휠 지경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입주만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공사 중단에 따른 입주 지연과 추가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위기 상황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기자가 대화를 나눠본 조합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보다는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더 컸다. 복잡하고 어려운 정비사업의 특성상 조합원 대부분은 사업 진행 상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조합 집행부가 제공하는 일부 정보와 문자 안내로만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소수로 구성된 조합 의도대로 사업이 진행되는 둔촌주공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행부도 조합원인데 손해 보게 할까요"…막연한 기대로 버티는 조합원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이 시공 사업단과 공사비 관련 극한 대치 중인 가운데 은행들과도 이주비대출 금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비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조합과 대출 은행들은 26일 총 2조1000억원의 대출 연장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과 1조4000억원 규모의 이주비 대출이다. 사진은 26일 오전 공사가 중단된 지 10일이 넘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2022.04.26.


지난달 15일 공사를 중단한 시공사업단은 다음 달에는 타워크레인을 철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업비를 대출해준 대주단은 시공사업단과 조합 간에 협상 진전이 없으면 오는 8월 도래하는 7000억원에 대한 대출 연장이 불가하다고 예고했다. 대출 연장이 안될 경우 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우선 변제하겠지만 결국에는 조합원들이 1인당 1억2000만원을 책임져야 한다.

연일 언론을 통해 조합원 개인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관련 정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조합 집행부는 입장문을 게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무관심한 고령의 조합원에게는 큰 효용이 없다.

A씨는 "입주 지연으로 인해 조합원이 져야 하는 금융비용이나 추가 이주비용 같은 내용은 어느 쪽에서도 들은 바가 없다"며 "사업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돼 조합 사무실에 연락해도 사람이 없는지 전화도 잘 안되고 매번 돌아오는 답은 '잘 하고 있다' '걱정마시라' 같은 내용이니 그냥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2년 동안 둔촌주공에 살며 자녀들을 전부 키운 60대 조합원 B씨는 "안 그래도 복잡한데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나 향후 계획 등은 일반 조합원은 알기 어렵고 봐도 잘 모르겠다"면서도 "조합집행부도 결국 분양권을 가진 조합원들 아닌가, 사업이 제대로 안 돼서 손해를 본다면 본인들도 떠안게 될 텐데 그걸 두고 보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사업·전문성 떨어지는 집행부·정보와 돈을 쥔 시공사…삼중고에 조합원들 등 터진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지난 16일 서울 강동구 동북고등학교에서 둔촌주공재건축조합 정기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과거 총회에서 통과된 '공사계약 변경의 건 의결 취소의 건'을 가결했다. (사진=둔촌주공재건축조합 제공) 2022.04.17.


이런 막연한 믿음 때문인지 둔촌주공 총회 주요 안건은 9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지난달 16일 '2019년 공사비계약변경 의결 취소' 안건은 90% 이상의 조합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의결로 2019년 진행됐던 공사계약 변경건이 취소되면서 현재 진행되는 공사 자체를 부정하게 됐고 공사 중단을 불러왔다고 해석했다. 조합 측은 이 의결로 인해 공사를 재개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계약서를 쓰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로운 계약을 위해 공사비를 다시 책정할 경우 높아진 평당 공사비로 인해 기존보다 증액된 비용을 조합이 부담하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결정이 단기간에 큰 저항없이 통과되는 데는 조합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고 일부 집행부가 정보 공개를 꺼리는 영향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조합 임원의 엄격한 자격 조건과 함께 현재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정비사업 정보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현재는 시공사 선정, 동의서 징구 때만 정보를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분담금이 몇억씩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기준"이라며 "조합 집행부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하는 만큼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둔촌주공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에서는 정비사업 관련 법안 발의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조합 임원의 책임 수준을 높여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지난 17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하나의 건축물이나 토지 소유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 경우 지분의 50% 이상을 소유해야 조합장으로 선출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지난 12일 조합에서 임원 선출을 위한 투표를 진행할 때 선거를 선거관리위원회에 맡기자는 내용의 도시정비법을 대표 발의했다.

1.9조→2.6조→3.2조...둔촌주공, 공사비 계속 불어난 이유
②공사비 증액
지난 1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단지에 타워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사진=뉴스1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중단 사태는 공사비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겉으로는 조합이 공사비 인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공사비가 인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약서 1.9조 공사비, 3조2000억원으로 불어난 이유

둔촌주공 사태의 핵심은 공사 계약서 작성 과정에 있다. 둔촌주공은 2010년 시공사로 현재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을 선정하고 같은 해 가계약을 맺었다. 당시 가계약서는 예정 공사비 수준인 약 1조9000억원에 맺어졌다. '추후 공사비는 협의한다'는 협의서와 함께다.

협의서는 추후 본계약 체결 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본계약 작성 시기가 되면 구체적인 건축 윤곽이 나와 비용이 공사비에 다시 반영된다. 둔촌주공은 2016년 약 2조6000억원에 본계약을 맺었고 이듬해부터 조합원들은 이주를 시작했다. 이어 2019년 착공에 들어갔고 2020년 공사비를 증액한 약 3조2000억원에 계약서를 고쳐썼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면 일단 협의서를 쓰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지만 조합원들은 정비사업 전문가가 아니어서 추후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하지 못한다"며 "착공 전에 공사비를 확실히 협상하고 계약서를 써야하지만, 공사비 인상이 가능하도록 계약서에 조항을 달아도 조합이 알아차리기 힘들어 시공사 선정 이후에는 시공사가 '갑'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설계변경 등 공사비 인상 요인 다양…전문성 없는 조합의 검증 한계

둔촌주공 외에도 수많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지가 공사비 인상에 따른 갈등을 겪고 있다. 공사비 인상 요인 중 대표적인 것이 '설계변경'이다.

시공사를 선정할 때 조합은 예정 공사비를 책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시공사가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 예정 공사비는 추정치로, 조합이 만든 설계를 기반으로 가격을 매긴다. 조합 설계는 인허가를 받기 위한 용도로 작업돼 조악한 수준이다. 반대로 시공사는 입찰에 참여하면서 조합의 표를 얻기 위해 '대안 설계'를 꺼내든다. 시공사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작성돼, 조합 설계와 비교하면 품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물론 대안설계는 조합도 요구한다. 대안설계조차 없이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는 수주 의자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조합은 월등히 뛰어난 시공사의 설계를 적용하기 위해 설계변경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사비는 늘어난다. 시공사 선정 당시 입찰가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조합은 시공사의 공사비 인상 요구에 당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는 없다. 돈이 더드는 대안설계를 조합원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이 깊어지면 둔촌주공처럼 파국을 맞기도 한다. 실제로 방배6구역은 공약 불이행과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시공사와 갈등을 빚다 지난해 계약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방배6구역은 2~3차례 설계변경이 이뤄졌다.

시공사는 조합의 표를 얻기 위해 '공사비 인상은 없다'며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설계변경처럼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많다. 그러나 조합이 이를 꼼꼼히 확인하고 대처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때문에 비전문가 중심인 조합이 아닌 신탁방식 정비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수수료를 받고 조합을 대신해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을 시행하는 방법이다. 신탁사는 무엇보다 정비사업 관련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문제 발생시 관계자들과 협상하는 등 조합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현행 신탁계약서는 조합에 불리한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있어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공정한 계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표준 신탁계약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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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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