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미끄러질 순 없다《미끄러지는 말들》 - 백승주 지음 [북적북적]

심영구 기자 2022. 5. 2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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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어 세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새로 나온 말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더 나아가 이런 식의 맞춤법 파괴나 언어유희를 넘어서 말장난 같은 걸 불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언어학자 백승주가 쓴 <미끄러지는 말들> , 이번 주 북적북적이 고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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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340 : 매번 미끄러질 순 없다. 《미끄러지는 말들》 -백승주 지음
 
"생파(생일 파티) 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생선(생일선물)을 들고 왔는데, 생선은 마음에 들었지만 사람이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못하더라. 여기까지 읽고도 낯설지 않다고? 정말 오나전(완전) ㅎㄷㄷ(후덜덜). 더 볼까? 그렇다면 이런 야민정음은 어떤가? 띵언(명언), 띵작(명작) 모르겠다고? 이런 댕청이(멍청이), 정말 롬곡옾눞(폭풍눈물)이 난다.... 사람들은 왜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가?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욕망 중 최고봉은 ‘그냥 이유 없이’ ‘놀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에서

위 글, 어떠신가요? 어디서 좀 들어본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리야' 할 수도 있겠고 '이거 몇 년 지났는데 아직도 쓰나'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한때는 신조어였던 말들을 한껏 사용해본 글입니다. 요즘 언어 세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겐 새로 나온 말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더 나아가 이런 식의 맞춤법 파괴나 언어유희를 넘어서 말장난 같은 걸 불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하신다… 하면서요.

말에는 그 시절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물론 현시점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반영돼 있고요. 한국어들에는 모습들이 비칠 겁니다. 한국어를 통해 새삼스럽게 관찰하고 발견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글로 풀어낸 책을 가져왔습니다. 사회언어학자 백승주가 쓴 <미끄러지는 말들>, 이번 주 북적북적이 고른 책입니다.

백승주 작가는 제주 태생입니다.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도 그렇지만 그가 제주에서 사용했던 한국어와 서울에 와 사용했던 한국어의 차이, 그리고 그 맥락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나의 두 번째 혀는 서울 사람들의 어투와 억양을 징그러울 만치 그대로 모사하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머물고 있던 친척 집에 늦는다는 전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커피숍 전화기 앞에서 나는 첫 번째 혀가 할 말 '승준디예, 좀 늦을 거 닮아마씀'과 두 번째 혀가 할 말 '승준데요, 좀 늦을 거 같아요' 사이에서 한참이나 고민했다.

저기 다른 혀를 사용하는 자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나의 '가짜' 정체가 발각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혀의 연대기>에서

저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에 살았는데 경상도와 강원도에서도 몇 년 살았고 미국에서도 잠깐 있었죠. 그래서 다른 혀를 가질 기회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도 저도 아닌지 싶습니다. 다른 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압박이 심각한 수준이었을 분들,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민정음이 한글을 파괴할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나는 이런 놀이 때문에 한글이 파괴되지 않는다에 오백 원,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하지 않으리라는 것에 만 원을 걸겠다. 야민정음은 그저 문자의 형태를 가지고 하는 놀이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놀이는 한글의 형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폭풍눈물이라는 말을 거울에 비춘 이미지인 '롬곡옾눞' 역시 '폭풍눈물'이라는 말의 형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다."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에서
"어지럽게 꼬여 있는 갈등의 현장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속으로 되뇔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이때 혐오의 헛소리 텍스트는 난마처럼 얽힌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 선명하게 정리해 준다. '복잡할 거 하나도 없어. 다 쟤네가 나쁘고 이상해서 그런 거야. 쟤네만 없어지면 돼. 어때 참 쉽지?' 나는 한국 사회 전체가 이처럼 무지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담화 공동체가 되어 가는 것이 두렵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문제를 직시하는 시선이나 문제에 대한 질문 자체가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는 문제적 집단에 대하여>에서

이 책은 작가가 재작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언어의 서식지'라는 칼럼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목인 '미끄러지는 말들'은 계속 변화하는 관계와 사회 속에서 말들의 의미가 제대로 규정되기보다는 늘 미끄러지고 미뤄지고 어그러지는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네요. 한쪽에선 극단적으로 보일 정도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들이 추구되고 다른 쪽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혐오와 차별의 말들이 난무하고 그런 어지러운 풍경 속에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말을 걸기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말들이 필요하다, 책에도 언급되지만 저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시간이 지나서일까요. 한때는 너무 싫거나 밉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많은 시간이 지나 바라본다면 어떠할까요.

*출판사 타인의사유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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