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헌트' 이정재 "칸서 감독 신고식 얼떨떨..최고의 정우성 찍고 싶었다"
첫 연출작으로 칸 무대 신인감독 데뷔 신고식 "막연했던 꿈, 몇 배는 기뻐"
23년 절친 정우성과 감독·파트너 동시 호흡 "'멋있어야 돼' 스태프도 세뇌"
'오징어 게임' 후광 유럽에서도 만끽 "韓콘텐트 해외에서 더 빛 봤으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새롭게 이뤄낸 꿈이다.
배우 이정재가 영화인들의 꿈의 무대, 제75회 칸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이하 칸영화제)에서 감독 데뷔의 꿈을 이뤘다. 각본·연출·연기까지 1인 3역을 소화한 영화 '헌트'('HUNT')가 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름을 받으면서, 영화는 지난 19일 자정(현지시간) 월드 프리미어로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영화인들 앞에 첫 선을 보였다.
칸이라는 어마어마한 무대도 무대지만, 감독 이정재의 행보는 시작부터 달랐다. 메가폰 잡는 첫 영화를 200억 대 대작으로 택하며 지체 없이 스케일을 키웠고, 그래서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칸. 칸에서 만난 이정재 감독은 "엄청나게 기쁘지만, 여전히 얼떨떨한 마음도 크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특별한 의미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 건 바로 '23년 절친' 정우성. 대한민국이 모두 아는 두 배우의 우정이지만 '태양은 없다'(1999) 이후 한 작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무려 23년이나 걸렸다. 그 만큼 쉽지 않은 재회였고, 그 이상으로 조심스러웠던 과정이다. 하지만 이정재 감독이 원했던 0순위는 단 하나. "내가 정우성을 최고로 멋있게 찍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법을 도저히 모르는 그다.
'하녀'(2010) 이후 12년 만에, 감독으로 다시 찾게 된 칸영화제지만, '오징어 게임' 스타라는 글로벌 존재감을 또 한 번 체감할 수 있는 시간도 됐다. 월드스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없었고,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Lee! Lee!"라며 사인·사진 요청이 당연하게 뒤따랐다. 이정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해서 그런지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적인 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이러한 현상을 기회로 더 많은 한국 콘텐트들이 해외에서 빛을 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럼 그 안에서 내 일이 또 생기지 않을가 싶다"는 진심을 표했다.
-현지에서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 중인 것으로 안다.
"일정이 꽤 많더라. 오늘도 외신 매체가 나라 별로 계획 돼 있는데 일단 열심히 홍보 해야 하니까.(웃음) 최선을 다해 만나고 있다."
-연출 데뷔작을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였다.
"워낙 큰 영화제고, 한국에서는 '깐느' 하면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대단한 영화제라는 인식이 있지 않나. 영화인으로서는 꼭 가 보고 싶은 영화제이다 보니까 사실 시나리오를 내가 쓰기 전에는 생각도 안 했는데, 내가 쓰면서부터는 '그래도 내가 쓰는건데. 칸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시나리오를 처음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나리오 하나 잘 쓰는 것도 힘든데 '칸을 가려면 어떻게 써야 하지?'를 먼저 고민했다.(웃음) 작은 꿈 같은 희망이었는데, 현실이 될 줄이야."
-칸을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5년 전 쯤이었을 것이다. 한국 영화가 갈 수록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끼리는 '기류가 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만 흥행을 하는 것보다 해외에 자꾸 나가야 한다'는 분위기는 그 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려면, 해외 분들에게 재미있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자연스레 고민하게 됐고, '해외 분들과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보자'는 방향성이 생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렇다면 깐느를?'이라고 기대해보게 되더라."
-초청이 확정 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
"너무 기뻤다. 이게 또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작은 꿈이었지만, 점점점점점 앞으로 진행이 되면서 그 꿈도 자꾸 더 커지더라. 그러다 보니 기쁨이 더 배가 된 것 같다."
-배우로서 칸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감독으로 박수를 받았다. 조금 다른 기분이던가.
"'하녀' 땐 전도연 배우가 워낙 칸에서 집중되는 배우였기 때문에, 방문을 했어도 내가 박수를 받기 보다는 박수를 치는 입장이었다. 임상수 감독님과 전도연 배우에게 박수 치는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는 '헌트'로 정말 박수를 받는 입장이 되니까 기분이 너무 묘했다. 그리고 박수를 너무 오래 치셔서 '어떻게 해야 하지?' 싶더라. 어색하게 같이 박수를 치다가 말다가 하는데도 관객 분들은 계속 박수를 치시니까 '이거 끌어 안기라도 해야 하나' 싶어 우성 씨랑 끌어 안았던 것이다.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하하하."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맞다. 처음 있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서 모든 상황이 여전히 얼떨떨하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큰 흥행도 처음이었고, 그로 인해 해외 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는 경험도 처음이다. 연출도 처음인데 자연스럽게 '헌트'로 관심이 이어지고 있어 좋다."
-최근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인가.
"음….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지금 같은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경험도 많이 하다 보니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개인적인 상황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우리'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 영화인들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실제로 추진도 많이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글로벌 하게 나갈 수 있을지 소재, 시나리오 쓰는 방법, 방향에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지, 해외 어떤 회사들과 배급 해야 하는지까지도 프로덕션 과정에서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다. 사실 나도 늦게 해외에서 유명해지고, 늦게 우리 작품들이 알려지게 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시작'이라고 받아 들인다. 나에게서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내가 출연하지 않고 관여하지 않은 한국 콘텐트들이 더 빛을 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그럼 나는 그 안에서 또 내 일이 생길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부터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이 된 영화인들도 많을 것 같다.
"많은 감독님들께 말했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께는 '판권 구매에 있어서 어떻게 생각 하냐'는 것을 처음부터 여쭤봤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 장재현 감독, 양우석 감독, 한재림 감독, 김성수 감독님 등 나의 감독님이라는 감독님들은 다 동원해서 조언을 구했다.(웃음) 어떻게 제작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연출을 했으면 좋겠는지,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는지 수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영화가 1980년 대를 배경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다. 허구의 내용이지만 외국 관객들이 볼 땐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더라.
"나도 해외 매체 인터뷰를 쭉 하고 있는데, 반응이 반반이더라. 앞선 인터뷰 등을 통해 감독의 변에서 썼던 내용을 참고하신 분들은 영화를 볼 때 한국의 정치적 역사 이야기 보다는 '거짓 정보와 거짓 선동에 의해 의식이 흐려져 갈등과 대립까지 나아가는 것'에 대한 지점을 잘 봐주신 것 같고, 반면 '한국의 정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네?'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설명을 많이 해주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같이 공감을 했으면 하는 주제는, 80년대 정부가 독재 속 거짓 정보를 뿌리면서 자기네들이 유리한 쪽으로 여론 몰이를 했는데, 그러한 집단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존재 할 것이냐. 우리는 잘못된 정부로 인해 생각이 다르다는 것으로 대립을 하지 않나. 솔직히 우리가 원해서 하는 대립은 아니다. 누군가가 원하니까 선동을 하는 것 아닌가' 충분히 열심히 전달하고 있다."
"서태지 세대라는 것이… 하하. 오랜만에 듣는 이름 아닌가. 하지만 정말 중요한 세대였던 것 같고, 나는 그 때 세대이기 때문에 굳이 진보든 보수든 어떤 성향을 나누는 세대 또한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 가운데서 더 좋은 것 ,더 나에게 맞는 것을 찾으려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옛날 식으로 편 나누기를 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 아닌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는 특히 더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 좀 하지 말자' 하는 것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캐릭터들의 여러 대사도 그러한 맥락에서 맞춘 것이다."
-파트너로 호흡 맞추기도 했지만, 감독으로서 배우 정우성을 바라보는 기회가 됐다.
"어떻게 바라본다는 것 보다도 '내가 정우성을 최고로 멋있게 찍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투톱 주연으로서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존재하니까. 김정도 캐릭터를 생각한다면 영화 안에서 캐릭터로서 밸런스 잘 맞춰 그를 최고로 멋있게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사부터 정도가 행하는 행동의 표현을 어떻게 찍을까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다 정우성을 위한, 정우성을 최대한 멋있는 남자로 보이게 하는 작업이었다. 콘티 회의를 할 때도 '정도가 멋있어야 돼! 정도가 멋있어야 돼!'를 끊임없이, 스태프들이 뇌리에 각인되고 귀에 딱지가 내려 않도록 말하고 또 말했다.(웃음)"
-왜 정우성에게 제안했나.
"우성 씨와 하고 싶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판권을 구매 했을 때부터 정도 캐릭터가 멋있었다. 근데 최초의 역할은 작았기 때문에 '캐릭터를 조금 더 증폭시키면 그가 가진 어떤 모습들을 좀 더 멋있게 담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민·조우진·정만식·박성웅 등 카메오 군단도 화려하다. 근데 김남길·주지훈 배우는 대사 한 마디가 없더라.
"내가 한 마디라도 드리려고 했는데!(웃음) 지훈 씨는 해외 있어서 녹음 파일을 못 받았고, 남길 씨는 현장에서 하나를 받았다. 왜 '~피해!'라고 소리치는 목소리 있지 않나. 그게 남길 씨 목소리다. 하하. 사실 우정출연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바쁜 분들이다. 팬데믹 시기 극장은 힘들었지만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 편 수는 많아졌다. 그래서 모든 배우들이 다 촬영을 진행 중이었고, 며칠이나 우리 영화에 출연을 해준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됐다. 특히 한 날 한 시에 다 모여 찍는 것도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한재덕 대표님을 비롯해 우성 씨, 그리고 나의 인연으로 흔쾌히 참여를 해 주셨다. 녹음 파일 하나까지 부탁하면 정성을 다해 연기해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린다."
-본인이 연기한 박평호는 어떤 인물이라 생각했나.
"평호 역시 위에서 강제적으로 주입 시킨, 어떠한 이념이 옳은 것이라고 믿었던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하는 인물로 생각했다."
-외신에서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와 비교하기도 했는데, 참고한 레퍼런스가 혹시 있을까.
"'라스트 모히칸' 등 남자 배우들은 너무나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이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액션을 잘 찍는 감독들의 영화를 찾아 보기는 했는데, 나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따라하기는 싫더라. 하하. '헌트'의 액션은 '헌트' 만의 액션으로 다르게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임팩트를 보여주고,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신을 좋아한다. 효율성도 있어야 하고 디테일하면서 자연스러워야 하고. 사실감에서 줄 수 있는 강렬함이 관객들 입장에서도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지점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콘셉트를 스태프 분들에게도 잘 설명 드렸다."
-이정재 감독의 회의는 어떻게 진행됐나.
"액션신을 준비한다고 하면 콘티 회의를 할 때 파트 별 스태프 분들을 다 참여 시켰다. 심지어 미술 소품 스태프까지 불렀다. '나는 이런 장면을 구현하고 싶고, 이렇게 되려면 폭발이 이 부분에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부분들을 잘 준비 해 달라'고 디테일하게 말했다. 한 대여섯 팀들이 모였는데 원래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하더라. '니가 오라고 해서 온 거다. 너니까 온 거다'라는 분위기였다.(웃음) 원래는 연출부들이 몇 명의 스태프들만 참여한 회의 내용을 파트 별로 전달해 드리면 각자 준비를 따로 하면 되는 건데, 바쁜 와중에 굳이 와서 내 설명을 다 들어야 하고, 각자의 시간을 할애하며 회의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참아 주셨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다 같이 준비해 촬영한 것을 현장 편집본으로 봤을 때 '그래도 다 같이 회의한 게 좋았던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다행이다' '감사하다' 싶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팀워크의 고마움을 여러 번 표했더라. 직접 경험한 첫 감독의 자리는 어땠나.
"'연출자가 먼저 생각을 다 해 놓은 다음에, 추가적으로 생각을 준비 할 수 있게끔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콘티 회의가 끝나면 난 집에 돌아가 그 다음 날 콘티와 그 날의 회의를 다시 정리해 시나리오에 반영하고, 수정해서 그 다음 날 콘티 회의 때 어제의 수정 부분을 캡처해 돌리고, 돌린 내용을 갖고 다시 수정 내용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했다. 현장에서 모두가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있었다. 현장에서 우왕좌왕 하는 것이 비효울적이라는 것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너무 많이 느꼈기 때문에 '나는 절대 그렇게 안해'라는 확고함이 있었다. 쉴 시간은 없었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영화가 나오겠다'는 믿음을 믿고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첫 연출작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만 더 있다면 최선을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꼼꼼히 더 만져 보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이게 내 마음대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특히 빅 버젯 영화는 개봉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그러한 영화만의 정해진 길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 욕심을 끝까지 고수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안에서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칸(프랑스)=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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