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라도 포장할까요?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지구가 망하려나 봐."
겨울은 너무 길고 춥고 초미세먼지가 몰려오며 겨우 봄을 맞이하는가 싶었는데 벚꽃이 다 질 때까지도 겨울옷을 세탁소에 맡기지 못한 채 변덕스러운 날씨를 견디며 '우리나라 날씨가 원래 이랬나?' 라는 의문을 품은 것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가볍게 시작한 많은 대화 상대들이, 너무 덥고, 때로 너무 긴 장마가 지속되는 여름과 이제 일 년의 반이 겨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고 지겨운 겨울이 아닌, '좋은 날'이 사라져버렸다며, 5월인데도 대체 옷을 어떤 두께로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봄가을 없어진 지 오래됐지' 정도로 끝났던 이런 종류의 대화의 끝이 최근엔 '지구가 망하려나 봐'로 바뀌어간다. 그것을 '지구온난화'로 부르든 '기후변화'로 부르든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파고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경각심이 늘면 행동하고 싶어진다. 행동하지 못하면 '죄책감'이 생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오늘의 에코라이프>(양철북출판사·140쪽)의 저자 테사 워들리는 일상생활에서 환경에 저해되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지만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 행동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판단하지 못한 채 죄책감만 가지고 생활하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개인 차원에서 느끼는 '환경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사실을 대면하면서 가질 만한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이라며 그러나 "마냥 죄책감을 느끼며 살 수도 없다"고 썼다. 그는 "정보를 접하고 참여함으로써 덜 소비적인 방식으로 먹고, 여행하고, 살아갈 수 있다. 개인이 일상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고 다독였다.
환경 전문가인 저자 워들리는 해양 및 담수 생물학을 전공한 뒤 영국 환경청의 글로벌 물 환경 컨설팅 부서에서 일했다. 현재 영국 환경부에서 근무 중이다.
이 책은 집에서 청소나 빨래를 할 때, 온라인 쇼핑으로 쌓여가는 포장재 쓰레기를 보며 한숨이 나올 때, 야외에서 식물을 키우거나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환경을 생각해 전기차를 사야 하나 고민일 때, 휴가지 숙소를 고르고 야외활동에 대비한 자외선 차단제를 챙길 때, 일터에서 종이와 플라스틱 생수통 사용이 고민될 때, 되도록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먹거리를 소비하고 싶은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 외식을 하러 갔는데 음식을 남기고 오는 게 나은지 아니면 업소에서 제공하는 플라스틱 일회용기에 음식을 싸 오는 게 나은지 판단이 안 설 때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지침서다.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갖는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리고 환경과 미래에 대한 죄책감 없는 생활을 안내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 설계됐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배송 받은 물품의 포장을 북북 뜯다 보면 '귀찮아서라도' 정말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포장재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환경에 대한 없던 근심도 생길 것 같다. 저자는 환경, 그리고 내 통장 잔고를 위해 온라인 쇼핑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 일단 한 가지는 유념해달라고 한다. 그렇다고 라면 한 개 사자고 홀로 자동차를 끌고 마트로 가지는 말라고. 물건 한 두 개 사자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단 주문 배송을 받는 것이 탄소 비용 측면에서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온라인 쇼핑 배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비용 중 최대 절반은 물류센터에서 현관까지 가는 최종 단계에서 발생한다며, 택배 회사가 편의점 배송이나 택배 보관함 등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집으로 배송을 받을 경우 당일이나 익일 배송보다는 택배사가 더 효율적인 배송 계획을 세울 수 있는 표준 배송을 선택하는 것이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 개씩 여러 번 주문하는 것보다 몰아서 한 번에 주문하는 것이 낫다. 물론, 애초에 덜 사고, 신중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저자는 말한다. 덜컥 산 뒤 반품하면 재판매 준비 과정을 피하고 싶은 업체가 때로 그 물건을 그대로 버리기도 하고, 쓸모없는 물건을 샀다가 중고로 되파느라 다시 배송 과정을 거치거나 최악의 경우 내가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으니까.
장을 볼 때 탄소 발자국이 적은 지역 먹거리를 애용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항공 운송이 아니라면 식품의 전체 탄소 발자국에서 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낮다는 저자의 말에 먼저 귀 기울여보자. 식품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운송보다 생산 방식에 달려 있어 단순히 근거리에서 생산된 식품을 구매한다고 해서 환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지역 농산물이라도 난방 시설을 갖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토마토라면, 제철의 적합한 기후에서 재배해 해상 운송된 다른 나라에서 온 토마토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훨씬 많다. 다만 아주 먼 거리에서 온 식자재의 경우 항공 운송됐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탄소 발자국을 생각할 때 가장 좋은 건 제철에 생산된 지역 먹거리다.
혹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면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저자는 석유를 사용하며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차량에 대한 의존을 끝내야 한다는 점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현재로선 전기차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전기도 화석연료로 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직 재생 에너지로 만든 전력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전기차로 바꿔도 기대만큼 환경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차츰 일어나고 전기차 효율은 더 오르며 기존에 타고 있는 화석연료 자동차가 수명을 다 하는 시점까지 전기차 구매는 조금 미뤄도 좋을 것 같다.
해양생태계 파괴 등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플라스틱 없는 고체 비누를 사용하겠다고 샴푸며 린스처럼 욕실에 널려 있는 플라스틱 포장 제품들을 당장 갖다 버리지는 말자. 일단 샀다면 전부 사용하는 것, 되도록 적게 사용하는 게 언제나 더 우선순위다. 이후 빈 용기는 대량으로 세제나 세안용품 등 제품을 갖춰 두고 내용물만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게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외식하고 남은 음식을 싸 가는 게 업소에서 제공하는 플라스틱 일회용기가 껄끄러워서 꺼려진다고? 저자는 음식물 쓰레기의 탄소 발자국은 그 음식을 담아가기 위한 플라스틱 용기의 탄소 발자국보다 열 배는 더 높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책에서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결정을 할 때 환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모두 따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해외여행 때 탄소 배출량이 많은 비행기보다 자동차 등 다른 육상 운송수단을 고려해보라고 권유하는데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인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물론 저자는 이동하기 전에 '꼭 그곳에 가야 하는가?'부터 자문해보라고 한다.) 비용 문제도 있다. 꼭 비행기로 이동해야 할 경우 저자는 경유보단 직항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직항은 보통 경유보다 훨씬 비싸다. 사실 현재로서는 저자가 제시하는 다른 많은 선택지들도 다른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우유,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 등.
그렇다고 환경을 의식한 생활방식이 '결국 돈 많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라고 너무 비꼬아 생각할 것은 없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값비싼 비즈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비즈니스석에 타는 것보다 1인당 탄소 배출량이 3분의 1~4분의 1로 줄어든다. 가격이 부담되고 옷감의 미세섬유를 더 많이 떨어지게 하는 건조기를 사지 않고 빨래를 자연건조 시키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미세섬유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옷의 수명도 늘어난다. 집안일을 늘 몰아서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괜찮다. 세탁기가 꽉 찰 때까지 기다려 세탁을 몰아서 하면 직물이 받는 마찰도 줄고 미세섬유가 빠질 확률도 줄어 환경에 도움이 된다. 식기세척기도 꽉 찰 때까지 기다렸다 돌리면 물 절약이 된다. 샤워는 부지런히 하는데 목욕까진 귀찮다고? 좋다. 물 사용량이 80리터에 달하는 목욕보다 10분 미만으로 후딱 샤워하고 나오는 게 물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저자의 우선순위는 '덜 사고 덜 쓰자'다.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을 '많이' 소비하는 것보다, 소비 위주의 생활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저자는 가이드를 제시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나 정답은 아니라고 맺음말에 시사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과제의 우선순위도 계속 달라진다. 때문에 환경을 고려한 선택을 계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여러 출처에서 나오는 최신 정보를 계속 접하고 분별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조용히 혼자 할 수 있는 실천 방법과 더불어 옷 바꿔 입기·직접 허브 키우기 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실천, 나무 심기 운동이나 야생 동식물 보호 활동 참여 등 환경 단체 활동 참여까지 제시한 저자는 마지막으로 기업이나 정치인 등에 더 나은 대안을 소소한 것부터 끊임없이 요구하기를 권유한다. 한 사람의 실천의 가치가 결코 작지 않지만, 그 실천으로 정책과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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