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보다 빼기.. 재료 본연의 맛 살린 '건강식' 모토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2022. 5.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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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씨' 이민우 셰프
佛·美 세계유명 요리학교 출신
우아한 디너 정찬 익숙하지만
아프신 어머니 위해 '환자식' 연구
영양은 듬뿍.. 소화는 잘 되게
고소하고 깊은 맛 '콜리플라워'
꽃 잎 닮은 '엔다이브 볼'
한땀 한땀 수놓 듯 정성껏 요리
이민우 셰프
양재천에 있는 ‘미누씨’의 이민우 셰프를 만났다. 그는 중학교 때 특별활동에서 처음 음식을 접하게 됐다. 이전까지 음식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때 접한 음식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중학교 때 이미 진로를 결정했고 고등학교 때는 삼성동의 레스토랑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파리의 르코르동 블뢰에 입학했고, 학교를 마친 후에 파리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기 사부아(Guy Savoy)’ 에서 일했다.
 
군대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던 이 셰프는 제대 후 미국의 CIA 요리학교로 건너가게 된다. CIA를 졸업한 이후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더모던(The Modern)’에서 근무한다.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 유학을 선택한 이유는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에서 양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정통 프랑스 음식을 경험했으니 산업화했고 외식 시장이 자유롭게 발전해 있는 미국의 음식을 경험하고 싶은 갈증이 많았다.

미국에 있는 동안 레스토랑에서 살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주방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생 2막을 그리던 중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급하게 귀국을 결정한다. 이 셰프는 어머니를 위해 ‘환자식’을 연구하면서 지금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요리의 기틀을 다졌다. 몸이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갈 만한 음식점이 없었고, 간혹 외식을 하더라도 먹고 나면 몸에 부담이 되고 힘든 음식들이 많았다. 이에 환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탄생한 음식이 지금의 미누씨 메뉴다. 그러다 보니 조미료는 사용하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자극적이지 않도록 직접 만든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셰프 음식의 모토다. 그는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고, 제대로 자란 식재료를 잘 손질해서 몸과 마음 모두를 채우는 음식을 고객들에게 선보인다. 그가 제공하는 음식은 이탈리안도, 프렌치도, 아메리칸도 아니다. 양식의 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무국적에 가깝다. 이 셰프가 선보이고 싶은 음식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보여주다 보니 어느 나라의 특정한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들을 그만의 스토리와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는 음식을 만들 때 영양과 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에 없던 식재료와 조리의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일부러 특이한 걸 선보이려는 게 아니고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재료에 집중하다보니 가득 올라가는 연근칩 튀김이나 닭모래집이 들어간 파스타처럼 독특한 음식이 나오게 됐다.
콜리플라워
미누씨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콜리플라워(꽃양배추). 한 번에 완전히 익히지 않고 세 번에 나눠서 익히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다.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게 속과 겉을 골고루 익힐 수 있다. 겉을 익혀서 코팅하고 속까지 익혀낸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익히게 되는데 모두 다른 방법으로 익혀 영양은 지키고 식감은 극대화한다. 콜리플라워에 부족한 영양소는 가니시로 보완한다. 곁들이는 사워크림을 베이스로 활용한 소스도 직접 만든다. 콜리플라워는 먹었을 때 특유의 맛과 식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야채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치킨과 비슷할 정도로 고소하고 깊은 맛을 야채에서 느낄 수 있다.
엔다이브 볼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엔다이브(꽃상추) 볼이다.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에 염소젖을 넣고 한번 더 발효한 생치즈와 엔다이브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생치즈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향과 질감이 좋다. 그러나 리코타 치즈만으로는 단조로울 수 있어 염소젖을 더해줌으로서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순수한 치즈와 엔다이브만으로는 약간 밋밋할 수 있기에 견과류를 캐러멜라이징한 뒤 뿌려서 임팩트를 준다. 취향에 따라 견과류나 치즈는 가감해서 먹을 수 있어 맛을 고객이 디자인할 수 있는 메뉴다.
시그니처 메뉴에서 보듯, 이 셰프의 음식은 기본에 충실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식재료의 본질에 집중한다. 미누씨 오픈 전까지 파인 다이닝에서 계속 근무했기 때문에 이 셰프는 장식적이고 섬세하면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식을 만드는 데 매우 익숙하지만, 더하기보다는 빼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지 않고 자신있게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셰프가 그리는 음식세계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건강한 음식이 몸에 좋은 것은 알고 있지만 직접 모두 조리하는 과정은 매우 번거롭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하나하나 만들고 숙성·발효시켜 건강한 음식을 제공해주는 것.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음식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모든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한땀 한땀 지어서 직접 만든 집밥 같은 음식을 선보이는 것. 이 모든 것을 이 셰프와 스태프들이 직접 만들어내고 있다.

이 셰프는 어린 나이에 음식을 시작해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아직도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는 사소한 일까지도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요리라고 얘기한다. 요리는 자신에게 ‘공이’ 같은 존재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식에 진심인 이 셰프의 음식들이 기대된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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