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실패였나..휴지조각 된 코인 '테라의 배신'

한겨레 입력 2022. 5. 21. 09:06 수정 2022. 5. 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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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한겨레S] 기획
루나 폭락 사태
"루나 1억원이 잔고 160원으로"
완벽한 줄 알았던 알고리즘 허점
폭락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 흔들
스테이블코인 무용론까지 대두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가상자산거래소 빗썸 고객센터에 최근 폭락한 루나 코인 시세가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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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코인 1억원어치를 샀는데, 잔고에 160원밖에 없어요.”

가상자산 시장에 곡소리가 나고 있다. 한국계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Terra)에서 사용하는 루나(LUNA) 코인의 가치가 한순간에 휴지 조각 같은 존재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테라에서 사용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유에스디’(UST)는 항상 1개에 1달러에 해당하는 가치를 보장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0달러대로 내려앉으며 투자자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루나는 5월 초만 하더라도 시가총액 300억달러(약 38조원)를 기록하며 한때 전세계 가상자산 중 8위까지 올랐다. 당시 루나보다 더 높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코인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7개에 불과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루나 시가총액이 불과 열흘 만에 4900만달러(약 620억원)까지 폭락한 것. 루나 코인의 개당 가격을 보면 더 놀랍다. 1루나당 117달러를 자랑했지만, 19일 현재 0.00014달러로 내려앉았다. 한순간에 99.99%까지 가격이 하락한 이번 루나·테라 파장은 국내를 넘어 전세계 가상자산 시장에 악재로 작용했다.

루나에 도대체 무슨 일이?

단적으로 루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5월5일만 하더라도 전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1조8000억달러(약 2282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19일 기준 1조2400억달러(약 1570조원)를 기록했다. 불과 보름 만에 전세계 가상자산의 약 31%가 디지털 먼지로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루나 폭락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스테이블코인 테라유에스디가 자리 잡고 있다. 테라유에스디를 알기 전에 스테이블코인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스테이블코인은 말 그대로 1코인의 가치를 ‘일정하게’(stable) 유지하는 코인을 말한다. 대다수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연동해 ‘1코인=1달러’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한다. 스테이블코인이 탄생한 배경은 간단하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일반적인 코인은 짧은 시간에 가격 변동성이 심해 결제나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에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항상 일정하다 보니 이런 점에서 유리하다. 또한 한국은 법정화폐로 가상자산을 구입할 수 있지만, 대다수 국외 거래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 대신 사용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크게 담보물 기반과 알고리즘 기반으로 구분한다. 세부적으로 담보물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담보 스테이블코인’으로 나눠진다.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과 일반 가상자산을 합친 ‘합성자산 담보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먼저 담보물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등 법정화폐나 또 다른 가상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테더(USDT)와 유에스달러코인(USD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발행하고자 하는 스테이블코인과 동일한 규모의 미국 달러를 은행에 맡겨둔다. 예컨대 100테더를 발행한다면 100달러를 은행에 보관하는 식이다. 법정화폐를 실제로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쉽다.

다음으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테라유에스디가 이에 해당한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담보물이 필요 없다. 대신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래밍 코드로 코인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설계한다.

테라유에스디는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루나라는 짝꿍이 필요하다. 평상시 1개의 테라유에스디는 1달러를 유지하겠지만, 만약 1달러 이하로 내려간다면 알고리즘은 테라유에스디의 가격을 다시 1달러까지 올리기 위해 루나를 새로 발행한다. 발행한 루나로 시장에 풀린 테라유에스디를 구입한다. 끝으로 앞서 구입한 테라유에스디를 소각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테라유에스디 유통량이 줄어들어 1달러까지 오른다.

반대로 테라유에스디가 1달러 이상일 경우에는 테라유에스디를 새로 발행해 시장에 풀린 루나를 구입하고, 구입한 루나를 소각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1달러를 중심으로 테라유에스디와 루나의 유통량이 늘어나고 줄어들면서 가격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프로그래밍(알고리즘)이 돼 자동으로 이뤄진다.

어찌 보면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여기에는 치명적인 빈틈이 존재한다. 예기치 못한 변수에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번 루나 폭락 사태는 테라유에스디가 1달러 유지에 일시적으로 실패하면서 발생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당연히 알고리즘은 1달러 유지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루나를 발행하고, 발행한 루나로 테라유에스디를 구입하고, 테라유에스디 소각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루나의 유통량이 일시적으로 늘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당연한 일이었고, 이 정도는 알고리즘의 예상 범위였다.

하지만 전통 금융시장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 위축이라는 점은 미처 알고리즘이 고려하지 못했다. 거시경제의 위축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하락하자, 시장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순간적으로 루나의 유통량이 늘어나자, 루나의 낙폭은 더 크게 다가왔다. 알고리즘의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

치명적 허점 노출, 루나 알고리즘

루나 가격이 하락하자, 테라유에스디를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루나가 필요했다. 외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알고리즘은 테라유에스디 가격 상승을 위해 루나를 더 발행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루나 가격이 더 하락한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최악의 경우는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1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를 유지하지 못하자, 시장에는 공포가 내려앉았다. 항상 1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믿었던 신뢰가 깨지면서, 테라유에스디가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테라를 만든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테라유에스디 가격 방어를 위해 자체 보유하고 있었던 비트코인 8만여개를 투입했지만,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긴 역부족이었다.

라이언 클레먼츠 캘거리대학교 경영법학 조교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을 주제로 한 논문 ‘실패할 운명’을 통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내재적 취약성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시스템이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각 코인 자체적으로 가치를 지녀야 하고, 완벽한 거래 정보를 예측할 수 있는 시장과 함께 이를 끌어나갈 거래자가 영구히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국 루나는 처음부터 ‘실패’라는 종착지로 달려갔던 셈이다.

박근모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mo@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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