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멈춘 둔촌주공, 강대강 대치의 끝은 '제2의 트리마제' 일까

이수민 기자 2022. 5. 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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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억원 대출 연장이 재건축 사업 유지의 핵심
대주단, 조합-시공단 합의를 연장조건으로 내걸어
경매 넘어가면 특수물건이라 아무나 손 못 대
공급가뭄 상황서 국토부·서울시 중재 먹힐 가능성도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공사 현장에는 총 57대의 타워크레인이 설치돼 있고 모든 크레인의 해체 및 철수는 7월 말 즈음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단군 이래 최대 정비사업’으로 불리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가 멈춘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며 원만한 해결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수1지역주택조합(현 트리마제)처럼 조합이 막대한 사업비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이 유치권자인 시공사업단에 넘어가는 ‘극단적 시나리오’도 펼쳐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오는 8월 24일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 연장만기를 앞두고 있다. 해당 사업비 대출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보증을 기반으로 집행됐다. 이대로 대출 기한이 종료될 경우 다수의 금융사로 구성된 대주단은 대출금을 당장 갚을 여력이 없는 조합 대신에 시공단에 대위변제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농협 등 24개 금융기관로 이뤄진 대주단은 대출연장의 조건으로 조합과 시공단의 원만한 합의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에게 원하는 수준이 너무 달라, 합의는 커녕 협상 테이블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정비업계의 전언이다. 시공단 관계자는 “사업비 대출의 연장 여부는 대주단의 몫”이라며 “시공단은 대주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시공단은 연대보증을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대주단이 끝내 사업비 대출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조합원 8월 24일까지 1인당 1억원이 넘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개별 세대의 주거를 위해 이주비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이자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 따라서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이 단계까지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협상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높은 확률로 조합이 보유한 사업권이 경매에 넘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공사 현장에는 총 57대의 타워크레인이 설치돼 있고 모든 크레인의 해체 및 철수는 7월 말 즈음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시공단이 지난 4월 15일 0시부터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둔촌주공 사업장은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규모와 절차가 모두 사례를 찾기 힘든 ‘특수경매’에 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수경매 물건은 법정지상권이나 유치권이 걸려있어 일반적인 경매물건에 비해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잘 하면 대박이지만 자칫 낙찰받은 건물보다 변제해야 할 비용이 많아 ‘배보다 배꼽이 큰’ 쪽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공단이 받지 못한 공사비가 1조7000억원대로 알려져 있는 만큼, 아무나 손대기 힘든 물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매전문가들은 통상 유치권이 행사되고 있는 사업장은 경매의 최종 낙찰자가 유치권자가 받지 못한 공사비를 모두 지불해야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치권자이자 막대한 자금을 갚을 여력이 있는 시공단이 둔촌주공 사업장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가 정비업계에서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변협 인증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황귀빈 변호사(법무법인 삼양)는 이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0%는 아니라고 봤다. 황 변호사는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시공사가 경매절차를 통해 당연하게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실질적인 경매에 돌입하면 유치권자는 새 매수인(낙찰자)로부터 공사비를 다 받을 때까지 부지에 대한 점유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유치권이 적법하다는 전제 아래, 시공단이 해당 사업을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변호사는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시공단과 조합은 인정되는 공사비에 대한 다툼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법원 판결로 확정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2014년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서울 성동구 성수1동 성수 트리마제를 일반분양할 때 내건 분양홍보물/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선례도 있다. 지난 2004년 서울 성동구 성수1지역주택조합은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일부 토지주를 설득하지 못해 사업에 필요한 부지의 95% 이상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아 일반 분양 사업비가 예상보다 줄어들었다. 결국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추가 분담금이 크게 늘며 조합과 시공사가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조합은 파산했다.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던 두산중공업은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인수하고 고급화를 추진해 한강뷰 최고급 주택인 트리마제를 기획, 전량 일반분양으로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둔촌주공 재건축사업과 성수1지역주택조합은 처한 상황이 조금 다르다. 우선 조합이 터 잡은 법률이 도시정비법과 주택법으로 서로 다르다. 또한 둔촌주공은 서울시나 강동구청과 같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토부까지 신경 쓸 정도로 단지 크기가 큰 사업장이다. 시기적으로도 둔촌주공은 서울 신축 아파트 물량이 고갈된 2022년에 문제가 터졌지만, 성수1지역주택조합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여서 오히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던 만큼 정부나 지자체가 중재에 적극 나서려는 경향이 덜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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