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모습이 자연스러운, 이효리의 힘은 어디서 올까

김선영 2022. 5. 2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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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표 공감 예능 3부작의 완결편인 〈서울체크인〉에서 그는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된다. 동료들과의 교감을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서막이기도 하다.
<서울체크인>의 한 장면.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연출을 맡았다. ⓒ티빙 제공

“얘는 진짜 신기한 애인 것 같아. 효리야, 너는 뭐야?” 〈서울체크인〉 4회, 김완선의 집에서 화장을 다 지운 얼굴로 나타난 이효리를 보며 엄정화가 애정 어린 감탄사를 내보낸다. “화장했을 때 예쁜 얼굴도 우리가 너무 익숙한데 지금 이렇게 민낯인 얼굴도 너무 익숙”하다는 김완선의 말이 끝난 뒤였다. 이날 방송 내내 세련되게 꾸민 얼굴의 이효리를 보아왔던 시청자들도 위화감을 못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맨얼굴도 예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어떤 얼굴의 이효리도 자연스럽게 이효리였다는 의미다. 엄정화의 말에 대한 이효리의 반응도 딱 이효리다웠다. “나, 이효리.”

다시, 이효리다. 2021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서 역사상 최초의 여성 호스트로 나서 특유의 ‘역대급 존재감’을 증명하고 제주의 본가로 돌아갔던 이효리는 최근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서울체크인〉으로 방송에 복귀해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서울체크인〉은 방영 전부터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연출을 맡은 사실로도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김태호 PD 자신의 표현대로 이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콘텐츠’인 이효리의 작품이다. “서울에서 이효리는 어디서 자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까? 이효리의 소울-풀 서울 스토리”라는 프로그램 공식 소개글을 보자. 〈서울체크인〉은 먹고 쉬고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곧 콘텐츠가 되는 슈퍼스타 이효리의 영향력에 기반한다.

독보적 스타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고민

“나, 이효리”라는 말로 설명이 끝나버리는 이효리의 독보적 존재감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서울체크인〉 1회에서 이효리를 만난 개그우먼 박나래도 대놓고 묻는다. “어떻게 하면 (이효리처럼) 계속 핫하게 살 수 있을까.” 정작 이효리는 되물었다. “나 아직도 핫해?” 실제로 〈서울체크인〉 파일럿에는 이효리가 MAMA를 준비하는 동안 느낀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13년 만에 MAMA 무대에 선 그는 아는 얼굴이 거의 없는 대기실에서 고백한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아? 다 바뀐 세상에 나 혼자 와 있는 느낌. 앞에 막 옛날 스태프 떠들고, 옆방에 원더걸스 있고, 저쪽 방에 비 있고, 그런 풍경에서 이제는 다 없고 나만 있는 기분이야. 다 모르는 사람에, 시스템도 다 모르겠고.”

이효리는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기쁨이 아니라 너무나 빠르게 사람을 갈아치우는 시대의 슬픔을 한탄했다. 자신 있게 “나, 이효리”를 외쳐도 계속해서 혼자 ‘핫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효리는 독보적 스타의 길이 아니라 공존의 길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답을 찾았다. 그 결정적 전환점을 잘 보여준 방송이 JTBC 〈효리네 민박〉이다. 〈효리네 민박〉은 제목처럼 전적으로 이효리의 힘에 기댄 프로그램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변화한 삶의 방식을 탐구하기에 적절한 텍스트가 됐다. ‘효리와 제주’라는 자막 하나 띄운 뒤,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이효리의 단독 샷으로 시작하는 〈효리네 민박〉 오프닝은 그 어떤 화려한 기교도 없이 그 자체로 화면을 온전히 장악하는 스타의 힘을 잘 보여준다.

<효리네 민박>에서 시청자는 관계를 통해 더 넓어지는 이효리의 세계를 목격했다. ⓒJTBC 제공

그러나 방송이 점차 진행되면서 우리가 목격하게 된 것은 독보적 스타의 아우라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 넓어지는 이효리의 세계였다. ‘이번 계기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법, 친구 아닌 사람과 친구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이효리의 말처럼, 〈효리네 민박〉은 문을 활짝 열고 타인들을 맞이하는 예능이다. 이효리가 직접 기획한, 문 없이 오픈된 집 구조부터가 방송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는 사실 이효리가 제주도 이주 이후 유기동물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여준 공존의 철학 연장선상에 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효리네 민박’을 찾은 손님들은 이효리, 그의 가족, 또 다른 방문객들과 교류하면서 위안을 얻었다.

〈효리네 민박〉 이후 같은 제작진과 이효리가 다시 한번 뭉친 JTBC 예능 〈캠핑클럽〉에서도 같은 주제의식이 빛난다. 〈캠핑클럽〉은 이효리를 ‘국민 요정’으로 만들어준 그룹 핑클이 특수 제작한 캠핑카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에는 캠핑의 낭만, 자연의 아름다움 등 여러 관전 포인트가 담겨 있으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핑클 멤버들의 관계 회복과 유대감 확인에 있었다. 방송 당시 이효리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솔로 활동의 즐거움’ 때문에 멤버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과거를 사과하며 눈물을 보였다. 멤버들 또한 각자 성격이 너무도 달랐기에 쌓였던 앙금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하면서 진심 어린 교감을 나눴다. 그것은 단지 같은 그룹 멤버들 간의 정을 넘어서, 여성 연예인의 수명이 유독 짧은 연예계에서 힘들게 버텨온 동지들의 공감과 연대의식이었다.

〈효리네 민박〉 〈캠핑클럽〉과 더불어 ‘이효리표 공감 예능 3부작’이라 할 만한 〈서울체크인〉에서는 유대의 서사가 한층 강해진다. 〈효리네 민박〉에서 여행객을 맞이하는 호스트, 〈캠핑클럽〉에서 직접 여행자가 되었던 이효리는, 〈서울체크인〉에서 친구들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된다. 만남의 상대 중에는 엄정화처럼 가까운 지인도 있지만, 처음 대화를 나누는 인물도 있다. 1회에 만난 박나래가 그렇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박나래에게 이효리는 ‘TV에서 보여준 공감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답한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중 몇 차례의 논란으로 시련을 맞기도 했던 박나래는 ‘사람은 실수를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과하면 결국 알아준다’는 이효리의 말에 힘을 얻는다. 이미 같은 경험을 숱하게 통과한 이효리만이 전할 수 있는 공감의 위로다.

방송은 이효리가 관계를 통해 위로받고 삶의 여러 의미를 깨닫는 순간도 담고 있다. 파일럿에서 엄정화를 만난 이효리는 MAMA 무대 당시 느꼈던 서글픔을 털어놓으면서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냐”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이효리에 앞서 여성 가수로서 험난한 길을 홀로 걸었던 엄정화 같은 여성 스타들의 존재를 새삼 환기한 순간이다. 엄정화와 동갑이자 연예계 경력은 대선배인 김완선과의 만남도 그렇다. 4회에서 김완선의 집에 초대된 이효리는 벽에 걸린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이 죽음의 여행이 행복하기를.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Never to Return)”이라는 칼로의 유언을 읽은 이효리가 김완선에게 물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언니도 그래요? 네버 투 리턴이에요?” 김완선의 대답은 담담했다. “당연하지. 한 번 살았으면 됐지. 뭘 또 살아. 그래서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 행복하게.” 방송 초반,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본성의 삶을 따르고 싶다’ 말했던 이효리의 생각과 교차하는 공감의 순간이었다.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는 동료들과 함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기획한다. ⓒ<서울체크인> 화면 갈무리

〈서울체크인〉은 이효리가 동료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려가는 더 큰 그림의 서막이기도 하다. 유독 더 가혹한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에 시달려왔던 여성 스타들이 ‘댄스 가수 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거기에는 김완선·엄정화뿐 아니라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억압된 감정 속에서 살다가 20대에 이효리를 만나 감정을 폭발시켰다던 보아, 숙소에 갇혀 살다가 멤버들과 일탈한 경험이 있는 화사 등이 가세했다. 이효리에 따르면 이 리스트는 선미, 현아 등 연예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또 다른 여성 스타들과의 관계로 얼마든지 확장 가능하다.

공감하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더 빛나는 결과

어떤 스타도 영원히 정상에 머물 수는 없다. 항상 ‘독보적’ ‘유일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효리도 진작부터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옛날에는 나만 최고, 막 이랬는데 이제는 이해심이 생겨. ‘스우파’ 멤버들이 잘나가고 이런 모습들이 질투 나고 이런 게 아니라 너무 예쁘고 다 잘됐으면 좋겠고. 나 철들었나 봐.” MAMA 엔딩 무대에서 콜라보 무대를 펼친 ‘스우파’ 댄서들을 보면서 이효리는 과거와 현재의 결정적 차이점을 말한다. 이제는 ‘나만 최고’가 아니라는 것.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더 빠르게 ‘새 얼굴’을 바꾸는 연예계에서, 이효리는 혼자 높이 올라가기보다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자신의 세상을 넓히는 길을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효리의 독보적 힘은 유일무이한 스타로서가 아니라 공감하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더 빛을 발한 결과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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