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걷기'의 역사다 [허연의 아포리즘]
걷기는 인간의 가장 일차적인 생존방식이자 운동방식이었다. 걷기는 오로지 속도와 지구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벌어지는 잡것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생명활동이다.
일상생활에서 기술이나 신념, 허위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면 오직 본질만이 남는다. 본질에 가장 가까운 움직임이 걷기다.
인류 역사는 곧 걷기의 역사다.
일어서서 두 발로 걷는다는 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었으며 인간을 지구의 강자로 군림하게 했다.
직립보행을 하면 네 발로 걸을 때보다 35% 정도의 칼로리가 절약된다. 인간은 이렇게 해서 남아도는 칼로리를 뇌에 공급했고 그 결과로 높은 지능을 갖게 됐다.
또한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손을 훌륭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손이 발처럼 여전히 걷는 것에 사용됐다면 인간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문명도 걷기가 만들어낸 문명이었다. 소나 말, 수레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휘관이 아닌 모든 로마 병사는 걸어서 대륙을 지배했다. 로마 군대의 행군 속도와 행군 거리는 장거리 육상 여행의 상한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례가 됐다.
로마 병사가 다져 놓은 길을 따라 지식과 기술이 전파됐고, 이 길은 흙길에서 자갈길로, 다시 아스팔트로 바뀌면서 문명의 핏줄 노릇을 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걷기는 두 가지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걷기 싫어도 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농민이나 하인, 영세상인, 가난한 순례자들이었다. 자기가 걷고 싶을 때만 걷는 사람들은 왕족이나 귀족, 부자들이었다.
걷고 싶을 때만 걸었던 계층들은 '산책'이라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생존과 상관없는 유희로서 걷기는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하나의 동인이 됐다. 사상가와 문인들이 걷기를 통해 사색을 했고 세상과 교감을 시도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독일의 대문호 괴테, 철학자 루소, 철학자 칸트 등은 걷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지평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산책은 시간이 흘러 등산과 탐험으로 연결됐다. 신대륙이나 오지 탐험도 걷기가 있어 가능했다.
따져보면 혁명도 결국 걷기였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봉기한 민중은 걷기를 통해 세상을 바꿨다.
한때 걷기가 쇠퇴하는 듯한 시기도 있었다. 자동차가 일상화된 무렵이다. 자동차가 주는 효율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걷는 것을 잠시 잊게 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지금 오히려 다시 걷기가 주목받고 있다. 걷기가 부활한 것이다.
걷기의 가치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걷기 말고 그 무엇이 건강과 활력, 자연과의 교감, 사색과 평화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
이 봄날을 걷자. 인간이니까.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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