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그 후.."천국 가는 표를 산다는 심정이었어요"

신지원 2022. 5.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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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나눈다는 것', 장기기증은 아마 수천 번의 고민 끝에 내려진 고귀한 결정일 것입니다.

기증인들이 자주 내비쳤을 다짐이 결정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겠지만, 남겨질 가족의 동의와 실천도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기기증 뒤 남은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새 생명을 얻은 이식인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낼까요?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기증인들의 가족과 이식인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 전시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표를 산다는 심정으로 장기기증을 결심했어요.
생명을 나누는 선한 일을 하면 지담이가 천국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0년 겨울, 이단윤 씨는 생후 8개월이던 아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잠이 든 아들을 안자마자 이상함을 느낀 엄마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들의 의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은 장기기증을 결심했습니다.

아들은 떠나면서 3명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남은 가족은 그해 말 서울을 떠나 경남 거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하늘을 향해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지담이의 이야기를 해요. 지담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갔다고요.
엄마와 아빠도 먼 훗날 지담이처럼 장기기증을 할 거라는 이야기도 꼭 하죠.
지담아, 혼자 먼 길을 보내서 미안해.
예쁜 지담이 덕분에 우리 가족이 참 행복했어. 정말 고마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장기기증을 결심했어요.
그냥 떠나보내기에는 남편은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거든요."

봄이 되면 아파트 화단에 핀 라일락을 꺾어 향기를 맡게 해주던 다정한 남편.

남편은 평소처럼 일을 마친 후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곧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지만,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져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아내 박미정 씨는 남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않았던 남편의 선한 모습을 떠올리며 장기기증을 결정했습니다.

2004년 11월 하늘의 별이 된 오철환 님은 4명의 장기부전 환자들에게 생명을 나눴습니다.


"이 세상 여행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신 어머니.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 생전 하셨던 소중한 약속을 꼭 지킬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75번째 생신 날, 큰딸 이영신 씨는 어머니의 귓가에 휴대전화 속 손주의 노래를 들려줬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생일을 보낸 박찬순 님은 얼마 뒤인 2020년 11월 세상을 떠나며 4명의 환자에게 생명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생전에 자녀들에게 입버릇처럼 장기기증에 대해 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가족들은 잊지 않았던 겁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을 쉬지 않았던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낌없이 나누고 먼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 엄마 손 망가지지 말라고 고무장갑을 사오던 아들이었어요.
아들이 떠난 슬픔 속에만 갇혀 있기에는 아들이 너무 젊었어요."

2000년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태어나 처음 돈을 벌더니, 집에 고무장갑을 사 왔습니다.

어머니의 고운 손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같은 해 3월 24일, 새벽 6시쯤 아들은 갑자기 심한 두통을 호소하더니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라는 말을 내뱉은 후 쓰러졌습니다.

그게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17살,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강석민 님은 9명의 환자에게 기적을 선물했습니다.

아버지 강호 목사는 고등학교에서 교목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퇴직 후에는 '도너패밀리(장기기증 가족)' 회장으로서 '도너패밀리 사랑방'을 지키며 장기기증인 유족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있습니다.

생명을 나누고 떠난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라 아버지는 외롭지 않습니다.

"생명나눔의 가치를 알리며
지금도 누군가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들과 영원히 동행할 거예요."


"오빠가 겪었던 아픔을 생각하면 슬펐어요.
그래서 뇌과학자가 돼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
오빠가 남기고 간 큰 사랑이 오랫동안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이젠 오빠보다 나이가 많아진 초등학교 6학년 왕수현 양은 오빠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오빠의 얼굴과 오빠의 장기를 이식받은 5명의 얼굴을 하트 안에 한데 그려 넣으며 밤하늘의 별이 된 오빠를 다시금 떠올립니다.

오빠의 이름은 왕희찬. '희망찬 아이'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했습니다.

2007년 7월 결혼 15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은 3살이 되던 여름 폐렴을 앓았고 호흡곤란까지 이어지며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아버지 왕홍주 씨는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절망했지만, 이내 아들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장기기증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왕희찬 님은 자신의 이름처럼 떠나는 순간까지 세상에 희망을 전했습니다.


"힘차게 뛰는 심장에 손을 얹고 백번, 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증인께서 주신 소중한 심장 덕분에 저는 엄마가 되었고
또 다른 조그마한 새 심장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심장 이식인 김지은 님)

20대에 심장 질환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김지은 씨는 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2017년 한 뇌사 장기기증인의 나눔으로 새 생명을 얻은 김지은 씨는 건강을 회복해 딸을 출산했습니다.

출산 당시 김지은 씨는 국내 두 번째 심장 이식인 엄마로 기록됐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안을 수 있는 기적, 그 기적을 안겨준 기증인과 기증인의 가족에게 김지은 씨는 오늘도 편지를 씁니다.

"달님, 천사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언젠가 만날 수 있다면 건강하게 자란 제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간 이식인 김리원 양)

김리원 양에게는 자신을 지켜준 천사가 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분명히 지금도 하늘에서 자신을 지켜봐 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리원 양은 생후 78일 만에 담도 폐쇄 진단을 받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복수가 차올라 숨 쉬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시간들이 흐르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뇌사 장기기증인의 나눔으로 간을 이식받아 건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7살이 된 김리원 양, 오늘도 스케치북에 꾹꾹 눌러 씁니다.

'천사님, 고맙습니다. 김리원'

(사진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촬영은 '따뜻한 사진가 협동조합'에서 재능 나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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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원 기자 (4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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