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살아있다]강 따라 흐른 용암의 자취를 찾아서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2022. 5.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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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세계지질공원 여행
비둘기낭폭포 옆 하식동굴. 천장에서 주상절리의 구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어린이과학동아DB

한탄강은 한반도의 중심부인 강원도와 경기도를 따라 흐르는 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약 50만 년 전 폭발한 화산이 한탄강을 따라 무려 100㎞ 를 흘러내리며 신기한 용암 지형을 잔뜩 만들어놨는데 말입니다. 지난 4월 19일 한탄강을 다녀왔습니다.

철원 고석정 │평야 가운데에 숨겨진 협곡을 찾아라
 

강원도 철원군의 논밭이 펼쳐진 넓은 평야. 한적한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놀라운 광경과 만납니다. 깊은 한탄강 협곡 중간에 15m 높이로 솟아오른 멋진 화강암 바위를 만날 수 있거든요. 이곳이 바로 한탄강 고석정입니다. 외롭게 홀로 서 있다고 하여 이 바위를 ‘고석(孤石)’이라 부르고, 이 경치를 보기 위해 옆에 세운 정자를 ‘고석정’이라 부릅니다.

처음 정자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시대 진평왕이 이 풍경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적으로 이름난 임꺽정이 몸을 숨겼던 곳이라 전해집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멍우리 협곡. 왼쪽으로는 오래된 변성암 지층이, 오른쪽으로는 현무암 주상절리 지층이 잘 보인다. 어린이과학동아DB

위풍당당한 고석 아래로는 한탄강이 흐르고, 강 주변으로 20m가 넘는 깊이로 깎아지르는 듯한 수직 협곡이 펼쳐져 있는 고석정은 지질학자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보통 물이 흐르는 하천은 바닥을 깎으면서 V자 모양의 계곡을 형성하는데, 이곳은 V자 협곡이 아닌 수직 협곡입니다. 이런 협곡이 생기는 이유는 철원 평야가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현무암질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 부피가 줄면서 각기둥 모양으로 갈라지는 ‘주상절리’가 만들어집니다. 현무암 위로 강물이 흐르면서 주상절리를 침식했고, 주상절리의 수직 기둥이 부서지면서 한탄강 주변으로 가파른 수직 협곡이 생긴 겁니다.

고석정은 중생대에 만들어진 화강암 위로 현무암이 덮인 지역입니다. 약한 현무암은 강물에 깎여나갔지만, 그 아래 있던 화강암은 상대적으로 침식에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화강암 기둥만 남아 멋진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고석정에서 30분 떨어진 경기도 포천시의 화적연입니다. 조선 시대의 화가인 겸재 정선은 이 화적연을 멋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멍우리 협곡과 비둘기낭폭포에서 주상절리 찾기

비둘기낭폭포. 현무암 주상절리 사이로 폭포가 떨어진다. 오른쪽에는 주상절리가 무너지면서 생긴 작은 동굴이 보인다. 우경식 제공

한탄강 일대를 덮은 용암은 언제, 어디서 왔을까요? 약 50만 년 전으로 추측되는 신생대 제4기, 지금의 북한에 있는 평강군 오리산 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화산은 잘 흐르는 현무암질 용암을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뿜어냈습니다. 북동쪽으로 흐른 용암은 산을 만나 흐름이 멈추고 말았지만, 남서쪽으로 흐른 용암은 한탄강을 따라 멀리까지 흐르면서 ‘한탄강 용암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용암은 우선 산으로 둘러싸인 철원 지역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용암이 한탄강을 따라 100㎞를 넘게 계속 흘렀습니다. 

철원을 메운 용암이 굳으면서 지금의 드넓은 철원 평야가 만들어졌습니다. 철원 평야를 여행하다 보면 중간중간 조그만 언덕이 보이는데, 용암에 묻히지 않고 튀어나온 언덕입니다. 이를 ‘스텝토’라 부릅니다. 용암이 현무암으로 굳은 이후, 강물이 그 위를 흐르면서 현무암 주상절리를 깎아 수직 협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한탄강 지형입니다.

한탄강을 따라 남쪽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포천시의 ‘멍우리 협곡’에서 현무암 주상절리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30~40m 높이의 현무암 절벽이 약 5.5㎞의 길이로 이어집니다. 멍우리 협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서 주상절리 절벽이 마치 만리장성처럼 늘어선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멍우리 협곡보다 주상절리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한탄강 지류에 있는 ‘비둘기낭폭포’입니다. 비둘기낭폭포는 작은 협곡 사이에 숨어 있어 바깥에서 보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지만, 안에 들어가서 보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됩니다. 폭포가 에메랄드빛 연못으로 떨어지고 있고, 그 옆 동굴에 현무암 주상절리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 동굴에서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낭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용암이 한탄강물에 빠진 증거를 찾아라

백의리층의 모습. 하천에 퇴적된 자갈층이 나중에 흐른 용암에 의해 덮여 있다. 어린이과학동아DB

과거에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흘렀다는 지질학적 증거는 여러 장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용암이 한탄강물 속을 따라 흐르면서 만들어진 경기도 포천시의 ‘아우라지 베개용암’입니다. 한탄강 건너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주상절리 절벽 아래로 현무암 덩어리가 둥글둥글 베개처럼 뭉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베개용암이라 합니다. 물속에서 분출한 현무암질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나 급속히 식으면서 둥근 베개 모양으로 굳어진 겁니다. 즉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과거의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이 물속을 흘렀다는 증거입니다. 

또 다른 증거는 아우라지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백의리층’입니다. 오늘 답사의 마지막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백의리라는 마을에서 발견되어 ‘백의리층’이라 불리는 이 지층은 아래쪽에 자갈층이, 위쪽은 현무암으로 덮여 있습니다. 자갈층의 자갈은 아주 둥글게 마모되어 있어서, 이전에 하천의 바닥을 굴러다니며 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자갈층이 현무암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용암이 하천 계곡을 따라 흐르다 굳었다는 의미입니다. 지질학자들은 이렇게 여러 지역의 증거들을 토대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측합니다. 

한탄강 용암지대처럼 용암이 강을 따라 먼 거리를 흐르며 다양한 용암 지형을 남긴 곳은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이런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탄강 일대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습니다. 한탄강 부근에는 이번에 소개한 곳 말고도 직탕폭포, 구라이골 등 다양한 지형들이 있으니, 지질학을 좋아하는 어린이라면 가족과 함께 꼭 한 번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한탄강 건너에서 바라본 아우라지 베개용암. 주상절리 밑에 둥글게 뭉쳐 있다. 용암이 물과 만나 급속히 식은 증거이다. 어린이과학동아DB

※필자소개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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