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수고한 특수목적견을 위한 두 번째 삶

김소연 기자 2022. 5.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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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제공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였던 지난 4월 9일 오후, 전시회를 보러 간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는 특별한 관람객이 있었다. 전시회장 가운데에 ‘개(犬)자’로 드러누운 이 관람객의 이름은 태주. 서울시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에서 산악을 수색해 실종자를 구조하는 일을 맡은 119구조견이다. 119구조견, 경찰견, 안내견 등 사람을 돕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훈련된 개들을 특수목적견이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 ‘은퇴영웅전’에서는 15인의 예술가가 모여 은퇴한 특수목적견의 여생을 일러스트, 영상, 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4월 22일까지 열린 이 전시에 태주는 VIP로 초청됐다. 아니, 개니까 VIP(Very Important Person)가 아니라 VID(Very Important Dog)가 맞겠다.

귀한 손님이긴 하지만, 선배들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인데 건방지게 드러누워서야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태주는 엄연히 일하는 중이다. 사람과 친숙하게 지내는 것 또한 태주의 임무기 때문이다.

태주의 핸들러 신준용 서울시119특수구조단 특수구조대 소방장은 “(태주가 근무하는) 서울 같은 경우, 산에 워낙 등산객이나 애완견이 많다 보니 대인 친화훈련과 대견 친화훈련을 하고 있다”며 “태주 같은 마리노이즈 종은 워낙 크다 보니 시민들이 위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핸들러의 허락을 받으면 쓰다듬어도 된다”고 설명했다.

한참 쓰다듬었는데도 짜증 한번 내지 않는 태주에게서 프로의 기운이 느껴졌다. 태주는 만 5세. 특수목적견으로 일한 지는 3년 된 아직 앞날이 창창한 현역이다. 특수목적견은 보통 태어난 지 2년이 될 때까지 양성 및 훈련 기간을 거친 다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정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아워비전의 권영율 대표는 “보통 활동한 지 7~8년이 되면 은퇴하곤 하는데, 특수목적견으로 주로 활용되는 대형견은 수명이 짧아 평균 10년, 길면 15년을 산다”며 “8~9살경에 은퇴를 하는 건 사람으로 치면 70살까지 일을 시키는 셈”이라고 했다. 아워비전은 특수목적견에 대한 인식 및 복지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다.

사람을 위해 바친 청춘을 향한 예의

4월 9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전시 ‘은퇴영웅전’에서 현역 특수목적견 태주가 관람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서연 제공

은퇴 이후의 삶도 쉽지만은 않다. 우선 새 가족을 찾아야 하는데, 워낙 노령에 은퇴하다 보니 견주에게는 입양하자마자 나이가 든 개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 특수목적견은 주로 덩치가 큰 대형견이 많아 선뜻 입양을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은퇴한 특수목적견을 입양하려 해도 관련 정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수목적견 입양공고는 소방, 군, 관세청 등 각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내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새 가족을 찾고 나면 이제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한다. 특수목적견으로 활동하는 동안 개들은 규칙적으로 짜인 리듬에 따라 관리받고, 구조, 탐색 등을 위해 운동을 한다. 그런데 은퇴 이후엔 반려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운동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권 대표는 “10년 가까이 지속해오던 삶의 방식이 뒤바뀌면 마치 운동선수가 은퇴하면서 갑자기 몸이 망가지듯 건강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권 대표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안내견 등으로 활약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경우 흔히 나이를 먹으면서 관절염을 겪는다”며 “그런데 관리를 잘 받고 운동을 많이 하던 ‘현역’일 때는 근육이 잘 발달해 관련 증세를 덜 겪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가 은퇴하면서부터 갑자기 활동량이 줄어 근육이 퇴화하면 관절염 증세가 급격히 심화되는 식”이라고 했다.

특수목적견으로 활동하며 생기는 직업병도 교정해야 한다. 구조견의 경우 실종자나 목표물 등을 찾으면 짖도록 훈련됐다. 잘 짖으면 예쁨받았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권 대표는 “방 안에 있던 사람을 발견하면 마치 실종자를 찾은 것처럼 짖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람을 위해 살다가 늙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많은 걸 체득했다. 이 영웅들이 은퇴한 이후,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인간이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아워비전은 특수목적견이 은퇴 후 일반 가정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돕는다. 우선 각 기관에서 공시한 은퇴 후 특수목적견 분양 공고를 취합해 공지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입양 간 특수목적견이 반려견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를 돕는다. 운동량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짖는 습관 등을 없애는 식이다.

“비전아,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119구조견 비전이와 비전이의 훈련사였던 권영율 아워비전 대표. 아워비전 제공

아워비전은 ‘비전’이란 이름의 119구조견으로부터 시작했다. 2005년 당시 삼성생명 구조견센터에서 훈련사로 일하던 권 대표가 태어날 때부터 직접 받아 양성한 개다. 2년여 간의 훈련 기간을 거친 비전이는 장비로 등재돼 2008년 경북소방본부 119특수구조단으로 이관됐다. 권 대표가 다시 비전이를 만난 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5년, 비전이의 은퇴식에서였다. 활동기간 동안 비전이는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실종됐던 할머니를 6시간만에 야산에서 찾아내는 등 시민 가까이에서 든든한 수호자로 활약했다. 121회 출동, 13명 구조. 비전이의 공적이다.

늠름한 특수목적견은 어릴 적 함께했던 훈련사를 만나자마자 다시 강아지가 된 양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비전이와 권 대표는 그 이후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비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2020년까지. 권 대표는 “훈련사로 일할 때부터 은퇴 후 특수목적견의 복지에 관해 생각이 많았다”며 “‘언제라도 국가에서 복지를 맡아 해주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은퇴 후 특수목적견을 위한 사후관리 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비전이와 다시 생활하면서 비전이에게 “비전아,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란 말을 했다”고 회상했다.

비전이는 떠났지만 아워비전은 남아있다. 아워비전은 ‘크고 무서운 개’라는 특수목적견의 인식을 개선하고 은퇴 후 특수목적견에 대해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 소방장 옆에 드러누워있는 태주를 본 시민들은 처음엔 주춤거리다가도 이내 익숙하게 태주를 쓰다듬었다.

권 대표는 “은퇴 후 특수목적견이 애완견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자신의 꿈을 소개했다. “국가에서 은퇴 후 특수목적견을 인계받은 다음 이들이 평범한 가정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재활 및 사후관리를 맡아 하는 거죠. 나아가 유기견을 특수목적견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또한 센터의 역할이 될 겁니다. 가령 작고, 호감을 끄는 외향에 호기심이 많은 유기견은 공항에서 탐지견으로 일할 수 있겠죠. 사실 특수목적견들은 자신의 일을 놀이로 여기고 재미있어합니다. 특수목적견으로 활약하는 유기견에게도, 특수목적견의 도움을 받는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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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5월호, [엣지 사이언스] 은퇴영웅전 수고한 너희를 위한 두 번째 삶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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