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사용후핵연료 저장고 이제 진짜 여유 공간 없다

김소연 기자 2022. 5.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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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용량 98.1% 꽉차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뒷걸음질 칠 곳이 없다. 사용후핵연료 이야기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올해 1월 발표한 ‘2021년 4사분기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에 따르면 전국 원자력발전소(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은 50만 7748다발이다. 전체 저장용량(51만 7460다발)의 약 98.1%에 달하는 양이다.

저장용량을 고려하면, 2031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고리원전(2031년), 한울원전(2032년), 신월성원전(2044년), 새울원전(2066년) 순으로 포화 될 전망이다. 월성원전의 경우, 지난해 3사분기 기준으로 98.8% 포화됐다가, 지난 3월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를 증설하며 숨통이 조금 트였다. 이마저도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증설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통령이 누가 됐든 이미 쌓여있는 사용후핵연료가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환경산업 분야 핵심공약은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신한울 원전 현장에 방문해 원자력 관련 공약을 발표하면서 “신한울호기 건설을 즉각 재개함으로써 원전 산업의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이 말대로 원전이 더 건설되면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이 앞당겨질 것은 당연하다.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갈 곳 없는 사용후핵연료, 원전에 쌓인다

문제는 국내엔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처분할 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앞서 전국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이 98.1% 포화됐다는 말은, 사용후핵연료가 영원히 잠들 저장고가 포화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우선 원전 내에서 ‘한시 저장’되고 있다.

이 한시 저장은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할 때까지를 말한다. 중간저장시설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인간 생활권에서 영원히 격리할 영구처분시설이 확보될 때까지 운영된다. 결국, 영구처분시설이 건설될 때까지 사용후핵연료는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를 거듭해야 한다. 원전 내 한시 저장시설에서 중간저장시설로, 그리고 영구처분시설로.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며 “부지선정 절차를 시작한 이후 37년내에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부지선정 절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중간저장시설도, 영구처분시설도 없다. 앞으로 한동안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저장시설에서 셋방살이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원자력 발전은 흔히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되곤 한다. 아파트를 더 지으려면 화장실 먼저 마련해야 한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신한울 원전 현장에서 “사용후핵연료 대책 마련도 철저히 하겠다”며 “집권 즉시 사용후핵연료 대책 마련에 나서 임기 중에 확실한 방안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확실한 방안’이란 뭘까. 현재 거론되는 기술을 살펴보자.

습식·건식 저장시설 │ 물속에서, 물 밖에서 사그라들길 기다린다

건식저장방식 중 하나인 맥스터.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 원통형 사용후핵연료 저장 용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조밀하게 세워놓았다.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최종목적지인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해둘 시설은 필수다. 국내 원전에서 운영 중인 저장시설은 크게 두 가지, 습식저장시설과 건식저장시설이다. 두 시설 모두 방사선을 잘 흡수하는 물질을 사용후핵연료 주위에 두껍게 둘러 방사선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쓴다.

습식저장은 물로 열을 식히고 방사선을 차폐하는 방식이다. 모든 원전에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다. 윤종일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습식저장은 1950년대부터 오랫동안 활용되며 안전성이 입증된 기술”이라며 “물로 냉각하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매우 높아 원전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를 바로 저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설 운영 및 관리가 비교적 복잡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한편 건식저장의 경우, 습식저장시설에서 5년 정도 냉각한 사용후핵연료를 금속이나 콘크리트 용기에 저장해 방사선 유출을 차단하고 공기로 사용후핵연료를 식히는 방식이다. 윤 교수는 “시설 운영 및 관리가 비교적 간단해 비용이 적고, 시설확장이 쉬운 게 장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장기간 보관에 적합한 데다 자연재해 등으로 전력을 상실했을 때에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어 최근 선호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월성원전이 건식저장시설을 운영 중이다. 산자부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에서 원전 내 저장시설로 채택한 방식 또한 건식저장방식이다.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DB

파이로프로세싱과 SFR │사용후핵연료도 다시 보면 자원이다?

사용후핵연료에도 여전히 우라늄이 남아있다. 사용후핵연료의 구성을 살펴보면 분열하지 않고 남은 우라늄 산화물이 93%, 우라늄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플루토늄, 넵투늄, 아메리슘 등 초우라늄이 1.4%, 그리고 핵분열로 생성된 세슘, 스트론튬 등이 5.6% 들어있다. 여기에서 94.4%에 해당하는 우라늄과 초우라늄을 따로 분리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파이로프로세싱이다. 처분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5.6%까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이런 식이다. 500~650℃ 고온의 용융염 속에 사용후핵연료를 넣는다. 그리고 여기에 전극을 걸어 우라늄 산화물에서 산소를 제거하고 다시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이 과정을 전해환원이라고 부른다. 이후 다시 한 번 용융염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용해하면 우라늄과 초우라늄을 동시에 회수할 수 있다.

회수한 우라늄과 초우라늄은 소듐냉각고속로(SFR)용 핵연료로 재탄생해 다시 발전에 활용된다. SFR은  4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새로운 원자력 발전 방식이다. 물을 냉각재 및 감속재로 사용하는 경수로 원전과 달리 소듐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고속로’란 이름대로 중성자의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원자로에서는 중성자의 속도가 느려 독성이 높은 초우라늄 등의 물질을 분열시켜 에너지를 얻기엔 부족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독성을 동시에 줄이는 방법으로 파이로프로세싱과 SFR을 꼽는 이유다.

파이로프로세싱과 SFR은 여러모로 최근 뜨거운 기술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이 설립한 원전 스타트업 ‘테라파워’가 건설할 원전으로 SFR을 채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 당선인 또한 TV토론에서 “핵폐기물은 향후에 파이로프로세싱 등을 통해 처리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한편에선 파이로프로세싱과 SFR 연구를 반대하는 의견도 거세다.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해 핵무기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지적. SFR의 경우 소듐이 공기와 만나면 폭발하기 때문에 화재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우려. 그리고 여전히 연구단계일 뿐 실증까지 가기엔 아직 멀다는 의견이다.

류재수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공정연구부장은 “국내에서 연구중인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기란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우라늄과 초우라늄은 용융염 속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분리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용융염에 사용후핵연료를 넣고 전극을 통해 특정 전압을 걸어준다. 그러면 그 전압차에 이끌린 원자들이 전극에 달라붙는다. 그런데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은 이끌리는 전압차가 비슷하다. 따라서 이 과정을 통해 플루토늄만 딱 분리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치 쌀과 보리를 체에 걸러 분리하기 어려운 것처럼.

SFR의 화재 위험을 막을 방법은 아직 연구중이다. 고속로를 이중배관 구조로 만들어 소듐이 공기, 물과 닿지 않도록 설계하고, 화재 센서를 설치하는 등 개선방식이 거론된다. 파이로프로세싱도 천천히 진전하고 있다. 류 부장은 “미국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최대 4kg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데 성공했다”며 “2030년대 말에서 2040년대 초에는 국내에 관련 연구시설을 구축해 실증할 것”이라고 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이를 모아 SFR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독성을 줄일 방법으로 꼽힌다. 자료 한국원자력연구원/동아사이언스DB

심지층처분 │ 사용후핵연료, 이곳에 잠들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기술이 다방면으로 연구되는 가운데, 궁극적인 처분방법은 단연 심지층처분으로 꼽힌다. 500m 이하의 지하 깊숙한 곳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 여기서 내뿜는 방사선이 자연방사능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수천~수만 년 기다리는 방식이다. 현재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채택해 부지선정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국조사, 기본조사, 심층조사의 세 단계를 거쳐 심지층처분 부지가 선정될 계획이다.

김유홍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방사성폐기물지층처분연구단장은 “부지선정 과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부지선정에 들어가기 전에 광범위한 시추 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처분 타당성과 기본처분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현재 본격적인 부지선정에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암반의 특성은 어떤지, 지하수가 흐르지는 않는지,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은 아닌지 등 다방면으로 조사한다.

‘안전함’을 설득할 책임, ‘불안함’에 귀 기울일 의무

핀란드 에우라요키에는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심지층처분 시설인 ‘온칼로’가 건설되고 있다. 온칼로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지하 500m에서 10만 년 동안 외부와 격리된다. 포시바(Posiva)사 제공

원자력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사용후핵연료 저장 및 처분시설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작업해도 될 정도로 안전하게 관리된다’고 했다. 그들이 제시한 증거는 과학에 기반해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원자력발전 관련 시설이 건설되려 할 때마다, 관련 기술이 연구될 때마다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가 거세다. 지난해 12월 산자부가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발표해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을 이야기할 때도 그랬다. 파이로프로세싱과 SFR을 두고도 그랬고, 앞으로 중간저장시설 부지와 심지층처분 부지를 선정할 때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걸 단순히 ‘님비(NIMBY)’현상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기엔 문제가 복잡하다.

정지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위험을 인식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며 “한 가지는 사람들이 해당 위험에 얼마나 익숙한지,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지다”라고 했다. 원자력발전 관련 시설은 여전히 평상시에 많이 경험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익숙하지 않은’ 시설이다. 동시에 이는 한 번 사고가 터지면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불러오는 ‘심각한’ 위험이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과 처분시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 교수는 “이런 이슈를 두고 과학적으로만 논쟁해 판가름 내리기란 어렵다”며 “신고리 5・6호의 공사 재개 공론화 과정처럼 민주주의적 기제에 해결을 맡기는 것 또한 방법이다”고 짚었다. 충분히 설명한 뒤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시로 스웨덴 포르스마르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과정을 들었다. 스웨덴의 부지선정 과정에서 정부는 몇 가지 입지 후보를 정해두고 해당 지역의 주민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개방적 절차를 통해 각 지역의 후보 입찰을 받아 부지를 결정했다. 정 교수는 “지질학적 적합성보다 사회적 고려를 우선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내는 어떨까. 현재까지 진행된 처분부지 관련 연구들은 지질학적 적합성을 먼저 고려했다. 그래서 결정질암으로 이뤄진 지역을 처분부지로 가정하고 연구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020년 발표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심층처분 부지조사를 위한 암반공학적 요소: 국내외 현황 및 사례 조사’를 살펴보자. 논문은 “처분 후보 부지를 결정질암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으며 다양한 암종과 그 지역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짚는다. 윤 교수는 “각 암반의 종류마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분시스템을 어떻게 안전하게 설계하고 안전성을 실증해서 최종처분장을 건설, 운영, 폐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결정할 여지가, 과학에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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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5월호,  [기획] 원자력발전의 ‘뒷일’을 어이하리, 사용 후 핵 연료

Part1. [기획] 98.1% 사용후핵연료 포화 직전

Part2. [기획] 핵폐기물 어디에 버릴까, 미래 세대를 위한 처분장 후보 4가지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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