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공들인 청약통장 물거품..'공시가 급등' 뒤통수 맞은 사연 [뉴스원샷]

안장원 2022. 5.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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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등 주거지. 뉴스1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공시가격 급등 후폭풍


40대 후반 김모씨가 15년 넘게 공들여 쌓아온 청약가점이 물거품이 됐다. 민간 건설사가 짓는 웬만한 민영주택 당첨권인 69점 짜리다(만점 84점). 청약가점은 민영주택 당첨자 선정 기준이다. 무주택자여야 하고 무주택 기간, 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기간 등으로 매긴 점수순으로 당첨자를 뽑는다.

사실 김씨가 조그마한 집을 갖고 있었지만 그동안 공시가격이 낮아 무주택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올해 공시가격이 훌쩍 뛰는 바람에 무주택 간주 기준을 벗어나 유주택자가 됐다. 청약가점이 ‘0’이다. 이 집을 팔더라도 무주택 기간이 처분 이후부터 계산되기 때문에 청약가점이 확 떨어져 당첨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만능' 청약통장이 쓸모없게 된 셈이다.

김씨는 “워낙 싼 집이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낭패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소리 없는 공시가격 급등 파장 사례다.

공시가격이 올해도 뛰었지만 시장이 예년보다 조용하다. 올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7.2% 오르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0%에 가까운 상승률을 나타냈다. 서울은 2018년부터 5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이다. 5년간 98% 치솟았다. 단독주택도 공동주택만 못해도 많이 올랐다. 지난 5년간 서울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65.7%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안에 대해 하향 등 의견을 제출한 건수가 1만건에 못 미친다. 지난해보다 80% 넘게 줄었다.

올해 공시가격 산정이 정확해서인가. 그보다는 정부의 올해 1주택자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 완화 방안 때문이다. 올해 과세 기준 금액이 지난해 공시가격이어서 올해 공시가격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공시가격 활용 분야 60여개 항목

하지만 올해 공시가격을 그냥 넘겼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공시가 영향이 보유세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보유세 등 조세뿐 아니라 기초연금 등 복지 분야 등 60여개 목적에 활용된다. 정부가 지난해 공시가격을 쓰기로 한 보유세와 건강보험료는 극히 일부인 셈이다. 나머지 60개 정도가 올해 공시가격에 좌우된다.

자료: 국토부

1주택자 보유세 이외 세금이 올해 공시가격에 따라 울상이다. 1주택자 보유세가 지난해 수준에서 멈추지만 다주택자는 급등한다. 조정대상지역인 서울에 가진 집 두 채 공시가격이 지난해 각 10억원과 15억원에서 올해 20%씩 총 30억원으로 오른 경우 총 보유세가 지난해 5500만원에서 올해 8100만원으로 늘어난다. 공시가격의 2배가 넘는 상승률이다.

양도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1주택자가 추가로 갖고 있어도 기존 주택을 팔 때 1주택자 비과세(12억원까지) 혜택을 받는 집이 읍·면 등의 공시가격 2억원 이하 농어촌주택이다. 부동산중개업계에 따르면 적지 않은 농어촌주택이 공시가격 2억원을 넘었다.

양도세 중과에서 빠지는 다주택자 주택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수도권·광역시·세종시 이외 지역에 있는 공시가격 3억원 이하 주택이 중과(20~30%포인트 가산)되지 않고 기본세율(6~45%)을 적용받는다. 공시가격 1억원 이하는 지역에 상관없이 2주택자가 팔 때 중과되지 않는다.

내년 5월 9일까지 중과가 한시적으로 중단되지면 그 이후엔 중과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종부세 합산에서 빠지는 주택이 임대주택으로 등록한 공시가격 3억원(수도권 6억원, 등록 시점) 이하 주택이다. 아파트는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없다. 등록 임대주택은 양도세 감면 혜택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종부세를 줄이기 위해 임대주택 등록과 매도를 저울질하다 공시가격이 올라 임대주택 등록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른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증여 비용이 늘어난다. 지난 10일부터 1년간 양도세 다주택자 중과 배제가 시행되면서 임대료 등 채무를 함께 넘기는 부담부증여에 대한 관심이 많다. 채무 부분이 양도에 해당해 중과 배제로 양도세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으로 산정하는 증여 취득세

증여하는 사람과 달리 증여받는 사람의 취득세가 늘어난다. 증여 취득세 기준이 공시가격이다. 다주택자로부터 증여받는 주택 공시가격이 조정대상지역으로 3억원 초과이면 취득세가 강화돼 12%다. 공시가격이 10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랐다면 증여 취득세를 2400만원 더 내야 한다.

공시가격 1억원 미만은 취득세 다주택자 중과에서 빠진다. 다주택자 취득세율이 조정대상지역에서 2주택 8%, 3주택 이상 12%다. 1주택자 세율이 1~3%다. 공시가격이 1억원 미만이면 실거래가 취득가격이 6억원 이하일 것이어서 세율이 1%다.

김종필 세무사는 “세금 종류에 따라, 조정대상지역 여부에 따라 세금 산정을 위한 공시가격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기준. 자료: 국토부

공시가격이 ‘로또’ 분양시장과 관계있다. 집을 갖고 있어도 집이 없는 것처럼 무주택으로 간주되는 기준이 공시가격이다. 전용 60㎡ 이하이면서 공시가격이 수도권 1억3000만원, 지방 8000만원 이하이면 무주택이다. 본인만이 아니라 배우자나 같은 세대원이 소유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입주자모집공고에서 가장 가까운 시점의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과거 집을 처분한 경우에도 처분 당시 공시가격이 기준 금액 이하이면 처음부터 집이 없는 셈이다. 기준 금액을 초과했다면 처분 시점부터 무주택 기간이 된다.

공시가격이 많이 오르며 무주택에서 유주택으로 바뀐 소형·저가주택이 많다.


세제 혜택 등 공시가 기준 현실화해야

공시가격 급등으로 세제 감면 등 혜택을 잃을 주택이 늘면서 공시가격 기준 상향 목소리가 높다. 공시가격 상승을 반영해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제 등 규제에서 비켜있던 중저가 공시가 주택이 빠르게 줄었다. 공시가격 1억원 이하가 공동주택 기준으로 2020년 449만가구에서 올해 376만가구로 2년새 73만가구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공시가격 3억원 이하가 160만가구 사라졌다.

앞서 일부 조정되긴 했지만 조정 이후 공시가격이 더 뛰었다. 청약가점제 무주택 기준인 공시가격이 청약가점제를 도입한 2007년 5000만원에서 2013년 7000만원으로, 2015년 현재 기준으로 바뀌었다. 2013년부터 2년 새 수도권이 7000만원에서 1억3000만원으로 거의 2배로 올랐다. 2015년 이후 제자리인데 공시가격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오른 것보다 2015년 이후 훨씬 더 많이 상승했다.

종부세를 도입한 2005년부터 3억원 이하이던 합산 배제 등록 임대주택 기준이 2010년부터 수도권에서 6억원으로 상향됐다.

근래 집값 급등을 반영해 양도세 1주택자 비과세 기준이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종부세 1주택자 공제 금액이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지난해 조정되기도 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세제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줄어드는 것은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시장 상황에 맞춰 탄력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기준. 자료: 국토부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공시가격 조정을 내세웠지만 집값이 급락하지 않는 한 공시가격이 내려갈 것 같지 않다. 공시가격 주요 쟁점이 시세 대비 반영률을 뜻하는 현실화율이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90%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올해 71.5%다. 새 정부가 현실화율 목표를 80% 등으로 낮추더라도 시세 30억원 이하는 현실화율이 더 올라간다. 이미 80%가 넘는 30억원 초과만 현실화율 인하 덕을 본다.

현실화율이 높아지면 시세 상승 폭보다 공시가격이 더 오르고, 현실화율이 내려가면 덜 오른다. 앞으로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중저가 공시가 주택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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