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발견] 다시 태어난다면 "마! 서퍼티지"의 도시 부산에서

입력 2022. 5.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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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산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퍼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처음 갔다. 그때까지 기차를 타고 가본 적도 없고, 버스를 타고 가본 적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간 게 처음이었다. 스무 살 대학 1학년 때 유사 MTB가 진짜 MTB인 줄 알고 친구 두 명이랑 한 대씩 사서는 무조건 동쪽으로 달렸다. 라이딩 팬츠가 뭔지도 몰랐고,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미니 텐트를 하나씩 짊어 메고 엉터리 헬멧을 어디선가 겨우 하나씩 구해 쓰고 달렸다. 사흘 걸려 한계령을 넘어 양양에 도착했고, 양양에서 다시 달려 나흘째 되는 날 오후에 기장에 도착했다. 기장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 무척 험했던 기억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를 겨우 달래며 ‘부산광역시’ 푯말까지 넘었건만 진짜 부산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리막길이 나타났고, 예쁜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달맞이고개였다. 시가지로 접어드는가 싶었을 때쯤 난데없이 바다가 펼쳐졌다.

처음에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농담인 줄 알았다. 방금 전까지 시장도 있었고, 술집도 있었는데, 갑자기 바다라니. 내가 그때까지 봐온 대천, 경포, 망상의 해변과는 격이 달랐다. 해변을 따라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沙場)이 눈부셨다. 심지어 그 길이도 축구장만큼 길었다. 사장 바로 앞에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홍대와 신촌과 문명의 상징인 T.G.I.F가 있었다. 특히 마치 이 해변이 전부 자기 것이라는 듯 위용 넘치게 서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이 압권이었다. 한여름이라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타올만 걸치고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횡단보도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 비치웨어 바지만 입은 남자들과 학교에서 하교 중인 교복차림의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있었다. 미국 혹은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초 선진국적인 자유. 어린 시절 딱 한번 가봤던 미국의 롱비치 해변이 떠올랐고, 나는 ‘뻑이’ 갔다. 이런 상스러운 표현으로밖엔 쓸 수가 없다. 서울 촌놈이 부산에 처음 가보고 넋이 나간 심정은 ‘뻑이 갔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법이다. 와, 한국에 이런 도시가 있다니. 왜 아무도 이런 멋진 도시가 있다는 얘기를 안 해준 거지?

부산의 복국. 부산관광공사 제공

부산 사는 친구가 아빠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왔다. 우리는 포텐샤를 타고 해변을 달렸다. 기장 쪽으로 다시 넘어가 송정이라는 곳에서 조개를 구워 먹으며 소주를 마셨고, 해수욕장 앞에 있는 배팅 머신에서 손이 까지도록 배팅을 날리고는 술기운에 뻗어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친구는 거드름을 피우며 우리를 복국집에 데리고 갔다. “복국 무 봤나?” 할매복국이었는지 금수복국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서 또 한 번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시키는 대로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맑은 국물을 떠 마셨는데, 시원한 감칠맛에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와, 이런 국물이 있다니. 왜 아무도 내게 이런 해장국이 있다는 말을 안 해준 거지? 가격이 비싼 걸로 봐서는 내 부산 친구 역시 그리 자주 먹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마치 수천 번은 먹었다는 듯 담담하게 ‘천천히 무라’라며 어른 행세를 했고, 그게 멋져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한번도 ‘다시 태어난다면 부산에서’라는 마음을 바꾼 적이 없다. 그 뒤로도 6번 정도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고, KTX가 생긴 뒤로는 수도 없이, 거의 반년에 한번은 다녀왔다.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건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여럿 잃고 태어나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롯데 자이언츠다. 나는 말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라고 말하고는 다니지만, 사실 맨체스터 시티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제일 잘하고 제일 멋진 축구를 하기에 좋아한다. 2위까지는 참을 수 있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인 4위까지도 참을 수 있지만, 만약 어느 해고 5위로 밀려난다면 다른 팀으로 갈아탈지도 모른다. 맨시티 팬인 이유 중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미드필더 케빈 데브라위너가 만약 다른 팀으로 방출된다면, 역시나 다른 팀으로 갈아탈지 모른다. 어쩌면 홧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할지도 모르겠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은 다르다. 롯데 자이언츠가 지난 십 년간 8위를 3번, 7위를 3번 했음에도 매년 봄이면 최강롯데를 외치며 1위의 꿈에 부푼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에게 두산이나 LG의 팬이 되는 것은 필수 조건이 아니지만, 부산이 고향인 사람에게 자이언츠 팬은 필수 조건이다. 부산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살지언정 마음은 주황색이다. 스포츠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야구 룰을 몰라도 고향이 부산이라는 이유로 롯데가 이기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부산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롯데 자이언츠 팬들. 롯데 제공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나는 다른 이들이 부산의 특징이라 꼽는 여러 특징마저 마음에 쏙 든다. 예를 들면 ‘서퍼티지의 전설’이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재현되길 바란다. ‘서퍼티지의 전설’은 부산의 한 기계식 주차장의 주차 관리요원인 듯한 이가 트위터에 부산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일이 얼마나 편한지에 대해 올린 글 때문에 생겨났다. 간혹 기계식 주차기에 큰 차 자리가 없다고 안내를 해줘도 ‘자리 날 때까지 기다릴게요’라며 다른 차들을 막고 서 있는 진상 고객들이 있는데, 부산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내용이다. 확성기에 대고 “스포티지 차량이 통행을 방해 중이니 고객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라고 방송을 하는 순간,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리며 “아재요. 보소”, “쩌기요. 내려보이소. 창문 내려보소!”, “마! 서퍼티지”라며 난리가 나고, 해당 차량은 조용히 사라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난 가끔 청계천에서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삼일대로 2차선에서 직진차로를 막고 좌회전 차로인 1차선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바람에 후방 차량들의 통행을 막는 얌체 무뢰한들을 볼 때마다 ‘서퍼티지’ 아저씨들이 서울에 있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한남동에서 도산대로 쪽으로 신사역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할 때 끼어드는 차량들을 보고도 마찬가지의 마음이 든다. 마! 서퍼티지!

고향은 마산이지만 부산에서 더 오래 산 나의 전 편집장 김도훈 선배는 부산의 백화점에 가면 일면식도 없는 어머님들이 “총각 잠깐만 이리 와봐”라며 데려가서 옷을 입어보라고 권하는 일이 간혹 있다며 당황하지 말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건 옷을 사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아들 옷을 사러 왔는데, 총각이 우리 아들이랑 사이즈가 똑같아 보여서 그래”인 경우라고 한다. 얼마나 정답고 좋은가?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일단 ‘총각’이라 불러 준 어머님의 고마움에 답하기 위해 열 벌이고 스무 벌이고 갈아입고 심지어 런웨이까지 해드릴 수 있다.

부산의 돼지국밥. 부산관광공사 제공

대학시절 자전거를 타고 해운대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차를 끌고 나와 우리를 맞이해준 친구는 서울의 지하철에서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젊은 청년과 아저씨가 싸움이 붙어서 서로 반말로 욕을 하며 싸우고 있는데, 같은 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나는 “너무하네. 주먹 나가기 전에 경찰이나 역무원에게 신고해야지”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는 더욱 놀랐다. 부산에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고성이 오가는 순간 가장 가까이 앉은 아저씨나 아줌마 한 분이 “쩌기요”라며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고 둘 사이에 싸움이 난 이유를 다 들어본 후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게 부산의 순리다. ‘일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당사자들을 다 둘러싸고, 둘 사이의 시비를 가려줘야 끝나는 게 부산의 싸움’이라는 게 친구의 말이다.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도 차갑게 속으로 욕만 하고 있었던 나의 과거를 반성한다.

나는 다음에 부산에 가면 현지인다운 부산 여행을 할 것이다.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부산역에서 내려 쏘카를 빌린 다음에 범일동 할매국밥에서 브런치를 먹고, 현대백화점 부산점에 들러 주차 정산기 앞에서 정산 요원과 할인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스포티지 차량에게 “마! 서퍼티지!”라고 한마디 해준 뒤, 5층 남성패션 코너를 서성이다 아들과 비슷한 사이즈의 남자를 찾는 아주머니를 도와드릴 것이다. 백화점에서 나와 보수동으로 넘어가 물꽁식당에서 포슬포슬 삶은 아귀 간을 먹고, 광안리로 넘어가 혹시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일어난다면 뛰쳐나가 시시비비를 가려줄 태세로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 보안관처럼 앉아 맥주를 마실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은 부산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마! 할매국밥 범일동 그기는 사람만 많고 만다꼬 가노”라고.

박세회 (소설가·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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