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달러, 20년만에 등가시대 다시 열까
미국 달러 강세와 유로 하락세로 인해 달러와 유로 가치가 같아지는 등가(패리티) 시대가 20년만에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말 유로당 1.137달러로 마감한 유로는 이달초 유로당 1.035달러로 가치가 추락했다.
■ 2002년말 등가시대
이후 낙폭을 일부 만회하기는 했지만 유로는 19일 1.059달러로 마감했다. 5.5%만 하락하면 등가시대에 들어선다.
1999년 1월 1일 출범한 유로가 최초로 달러와 등가시대를 연 것은 약 4년 뒤인 2002년 말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곧바로 상승하며 등가 시대를 끝냈다.
유로는 이후 2016년말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하락해 등가에 접근한 적이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올리고,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무역긴장을 높여 달러 가치가 올랐다.
그러나 등가에 접근하던 유로-달러는 2017년 유로존(유로사용 19개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다시 격차가 벌어졌다.
■ 등가 현실화 가능성 고조
시장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그러나 2016년과 달리 유로와 달러 가치가 같아지는 등가시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우선 연준의 강력한 금리인상이 그 배경이다.
연준은 3월 0.25%p 금리인상에 이어 지난 4일 0.5%p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6월과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0.5%p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빅스텝'이다.
연준은 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멈추지 않으면 0.75%p 금리인상, 즉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해왔다.
강력한 미 금리인상 충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 등의 충격까지 겹친 유로존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유로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급격한 에너지 가격 인플레이션, 중국 봉쇄에 따른 수출 둔화로 성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 통화정책 분화
미 연준이 강력한 금리인상 드라이브를 걸면서 전세계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아직 통화완화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ECB가 다음달 국채 매입 축소를 시작으로 7월 21일에는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연준처럼 강력한 긴축 드라이브를 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아직 탄탄한 미 경제 성장세와 달리 유로존 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중국 봉쇄에 따른 수출 둔화로 성장 둔화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 등가 확률 30→75%로
반다리서치의 글로벌 거시전략가 비라지 파텔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만 해도 달러-유로 등가 확률은 30%로 봤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75%로 그 가능성을 높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파텔은 ECB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0.25%p 인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럴 경우 유로 하락세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요아킴 나겔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총재가 0.5%p 금리인상을 요구했지만 경기둔화 속에 ECB가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미칠 수도 있는 그 같은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유로·달러 등가, 인플레이션 더 재촉하나
이는 유로존 인플레이션을 더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수입물가가 더 오르고, 이때문에 전반적인 물가가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전쟁, 봉쇄 등 지정학 변수와 공급망 차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로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라보뱅크 외환전략 책임자 제인 폴리는 통화가치 약세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한다면서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폴리는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유럽 주식시장 매력도 감퇴해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 주식 흐름을 나타내는 스톡스유럽600지수는 올들어 11% 하락해 미국 주식시장 낙폭 20%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지만 유로 가치가 추가로 하락해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져 등가시대에 돌입하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폴리는 아울러 유로달러 등가시대가 불러올 불확실성과 변동성으로 인해 ECB의 통화정책 결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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