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 16%, 유치원 의무교육 못받는다
2008년 법제화후 사실상 손놔
1265명이 유치원 등록 못하고 집에 있거나 어린이집 다녀
"특수학급 시설 규정 완화해 장애아동 학습권 보장할 필요"
서울에 사는 회사원 김모(42)씨는 지난해 휴직계를 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올해부터는 아들이 만 3세가 지나면서 의무교육 대상(유치원)에 포함되기 때문에 다소 숨을 돌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휴직을 연장할 수 밖에 없었다. 집 주변 특수학급이 있는 유치원 7곳 정원이 다 찼기 때문이다 일단 특수학급에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지만 언제 날지 모르는 상황. 김씨는 “중증인 아들을 밖에 데리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워, 답답하다고 할 때면 베란다에서 아이와 놀아준다”고 했다. 2008년 특수교육법을 만들면서 장애 유아를 만 3세부터 의무교육을 받도록 했지만, 정부가 법만 만들고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혜택을 보지 못하는 장애 유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통계청·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만 3~5세 장애 아동 수는 8454명. 이 가운데 유치원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동은 5263명으로 62% 정도다. 비장애인 아동들과 함께 일반학급에 다니는 아이들(1826명)도 있지만, 김씨 아들처럼 유치원에 등록을 못 해 집에 있거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동이 1365명(16%)이다. 일단 특수학급이 설치된 유치원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8660곳 중 1001곳(11%). 초등학교(75%)·중학교(60%)·고등학교(46%)에 비하면 특수학급 설치 비율이 두드러지게 낮다. 2008년 165곳, 2012년 305곳, 2016년 567곳에서 작년 1001곳으로 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특수학급에 들어가더라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조모(43)씨는 지난 3년간 자폐성 장애가 있는 딸을 40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으로 등원시켰다. 버스로 20분을 가고도 20분을 더 걸어 들어가야 해서 ‘버스 정류장을 하나만 더 늘려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은 적도 있다. 조씨는 “딸이 걷기 힘들어 울 때도 많았다”며 “일곱 살 난 아이를 업고 가다가 너무 지쳐 길바닥에 주저앉아 같이 운 적도 있다”고 했다.
국공립 유치원은 교육청에서 특수교사를 배치해주지만 사립 유치원은 직접 채용해야 한다. 장애 유아가 매년 들어올지 알 수도 없고 한 교실에 장애 유아 4명만 돌볼 교사를 채용하기엔 부담이 크다. 특수학급은 세면장·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66㎡(20평) 이상 교실이 있어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립유치원들은 여건이 쉽지 않다. 실제 특수학급이 있는 사립유치원은 3599곳 중 1곳에 그친다.
새로 만들기 어렵다 보니, 기존에 특수학급이 설치된 곳 중에는 한 교실 당 네 명인 법정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부 유치원 현황 통계를 보면 작년 특수학급이 설치된 유치원 1001곳 중 134곳이 정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희 중부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있는 지역에는 예외 조항을 두고 한시적으로 시설 규정을 완화해 장애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립 유치원에 특수학급 설치를 위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수요가 한두 명뿐이라 교사 배치가 어려운 곳에도 교사를 임시 파견하는 형태로 지원한다면 아이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유보(유아교육·보육)통합을 통해 모든 장애 아동이 유아학교에서 균등한 수준의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어린이집은 법정 특수교육기관이 아니어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간 교육 격차가 크고 이에 따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장애 아동이 실질적인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윤석열 정부는 연내 ‘유보통합추진단’을 구성하고 0~5세 영유아의 보육·유아교육의 단계적 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을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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