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울산 사건’ 법정서 벌어진 일
지난 16일 ‘청와대의 울산 선거 개입’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법정. 피고인인 송철호 울산시장이 불출석했다. 변호인은 ‘지방선거 준비로 못 나온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정당한 불출석 사유가 아니라며 그가 없는 채로 재판을 진행했다. 이 사건은 현재 2년 4개월 가까이 1심 진행 중이다. 전임 재판부가 공판 준비에만 1년 3개월을 허비한 탓이 크다. 검찰이 ‘청와대가 송 시장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송 시장은 4년 임기를 다 채우고 재선에 도전 중이다.
이 법정에선 ‘말 바꾸기’도 종종 벌어진다. 검찰 조사에서 “첩보 출처가 청와대라고 (울산 경찰에) 알려 줬다”며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현 민주당 의원)의 ‘청와대 하명 수사’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던 증인이 법정에서는 “기억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송 시장 캠프 인사로 “청와대에서 안 도와주면 배째라 하이소”라고 했던 증인도 법정에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현재 이 사건은 수사 검사들이 직접 재판에 들어와 공소 유지를 하고 있다. 수사 이후 좌천 인사로 대구·경주를 전전하는 김태은 부장검사를 비롯해 울산·부산 등 전국 각지에 흩어진 검사들이 모인다. 증인들을 직접 조사한 이들은 법정에서도 서로 번갈아 질문하며 흐려진 진술을 명확히 다듬는다. 증인의 말 바꾸기 뒤엔 변호인과의 거듭된 ‘면담’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 낸다. 이런 식으로 시간과 지역사회 연고(緣故)에 흩어져가는 증거들을 간신히 수습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원안(原案)에 따르면, 수사 검사는 아예 재판에 참여할 수 없다. 이들에게 수사 기록만 넘겨받은 공판 검사가 들어온다. 사건을 직접 수사하지 않은 공판 검사들은 개인적 역량을 떠나 증인의 말 바꾸기에 속수무책이다. 재판부가 사건을 물어보면 즉답을 못 한 채 ‘알아보겠다’고 하고, 재판은 공전된다. 노련한 변호사들의 ‘증인 흔들기’에도 무력하다. 음주 운전·절도 같은 간단한 사건이라면 몰라도 수사 단계에서부터 대대적 저항을 받는 ‘권력형 비리’는 사실상 공소 유지가 불가능하다. 한 부장판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하면 법원은 편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증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현재 통과된 검찰청법은 수사 검사가 ‘기소’만 못 하게 하고 있어 재판 참여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수사-기소 분리’라는 용어를 인권의 상징처럼 내세우는 것을 보면 원안으로의 복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판사가 주재하는 공개 법정에서 수사 검사에 의한 ‘인권침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사-기소 분리’ 의 비효율이 실체적 진실을 묻어 버리는 정의롭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칫 길을 잃을 뻔했던 ‘울산 선거 개입’ 재판이 그런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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