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지고 다시 일어난 곳엔 '기억의 책갈피'가 남아있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지음|다산책방|252쪽|1만4000원
“책갈피 같아, 그런 일은.” 문지혁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의 표제작 속 인물 ‘아야’는 성수대교 붕괴에 얽힌 친구의 기억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재난의 기억은 희생자만이 아닌 주변인의 일상까지 뒤흔들고, 그 파동을 오래 이어간다. 남겨진 이들은 계속 일상의 책장을 넘겨보지만, 실수로 손을 놓치면 이전 책갈피가 꽂혔던 재난의 순간으로 금세 기억의 페이지가 되돌아 가버린다.
그런 재난에 대한 책갈피 8개가 이번 소설집에 담겼다. 2010년 단편 ‘체이서’로 데뷔한 작가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쓴 단편들을 모았다. 상실(다이버, 서재, 폭수, 아일랜드), 살인(애틀랜틱 엔딩), 사고나 천재지변(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전염병(어떤 선물) 등 다양한 면면의 재난을 다룬다. 개중 세월호 사건, 9·11 테러, 동일본 대지진, 코로나 팬데믹 등 우리가 실제 지나왔던 현실 속 재난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있다.
소설 속 재난으로부터 ‘남겨진 이들’은 특히 ‘불운의 확률’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단편 ‘폭수’에서는 확률에 정통한 천재 수학자가 자식을 잃고 나서 매일같이 호수에 동전을 집어던진다. 동전이 물의 에너지 밀도에 우연히 영향을 미쳐 폭발시키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다. 마치 자신에게 찾아온 불운이 꼭 일어날 일이었단 것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다.
작가는 소설 후기에서 재난을 쓴 이유로 “우리가 스러지고 다시 일어선 곳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의 믿음이 담긴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그저 불운과 아주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존재란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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