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이기주의에 맞서.. 신념을 불사르다

김용출 2022. 5. 2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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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나 세상의 대세·외부의 압력 거부
자신이 속한 조직·협회의 부조리 맞서
현대사 속 이단아 57명의 삶·사상 조명
의료계 독과점 비판한 샤디드 대표적
로마가톨릭 문화제국주의 비판 일리치
학맥주의 거부 그레이버의 삶도 주목
영남대 명예교수인 박홍규 박사는 새 책에서 현대사 속 이단아 57명의 삶과 사상, 문학과 예술을 간명하게 소개한다. 소개된 인물들은 시대나 대세, 조직 이기주의가 아닌 더 큰 대의를 위해 사회나 국가는 물론 자신이 소속 조직과 과감히 맞섰다. 사진은 마이클 샤디드, 이반 일리치, 데이비드 그레이버, 이지도어 스톤.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박홍규/인물과사상사/1만8000원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일찍 더 오래 아프고, 가장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할 때 가장 적게 치료받는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젊은 의사 마이클 샤디드는 1923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엘크 시티에서 현지 농부들이 고된 노동과 비싼 진료비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탄식했다. “그들은 아프기 때문에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아프다.”

샤디드는 현지 농민 환자 모임을 소집하고 엘크 시티에 협동조합이 소유하는 진료소와 병원 설립을 제안했다. 오클라호마 농민조합은 그의 제안을 적극 지지했고, 1931년 지역사회 보건협회 주도로 협동조합 병원의 문을 열었다. 미국 역사상 첫 협동조합 의료기관이었다.

1882년 레바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샤디드는 베이루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6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고학으로 어렵게 의대를 마친 그는 의사들이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부당한 독과점 시스템을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즉, 의사협회가 의대 정원과 입학을 제한하고 의사와 의료 서비스 공급을 제한하면서 의사들의 수입을 올리고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며 의사협회야말로 ‘현대의 대사제장’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와 의사협회는 의료협동조합 운동을 벌이고 의사들의 독과점 체제를 비판하는 샤디드에 발끈했다. 자신의 이익 기반이 밑바닥에서부터 허물어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의사협회는 20년 넘게 회원이던 그를 제명했고, 배상책임보험 대상자에서 제외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샤디드의 의사면허를 취소하려 시도했고, 협동조합 의료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샤디드와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도 협박했다.

의사협회는 샤디드를 비롯한 진보 의료인들의 의료 민주화와 공공의료 시스템 건설 주장을 외면하는 한편, “퇴폐한 국가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비난받아 마땅한 시스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뉴딜정책 안 사회보장제도에서 의료보험제도만 쏙 빼냈다. 미국은 현재까지 공공의료제도를 거의 갖추지 못했고, 최근 코로나 팬데믹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가 됐다.

샤디드는 의사협회에 굴하지 않고 “국가를 독재와 혼돈의 길로 이끄는 특권층 지배를 피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선언한 뒤, 의사협회를 비롯해 협회에 동조한 기득권과 동맹 세력인 보수 언론에 맞서 싸웠다. 그가 만든 협동조합은 1939년까지 오클라호마 남서부의 농부 1만여명을 위해 활동을 이어갔다. 1947년 미국협동조합보건연합을 설립한 뒤 재단 총재까지 지낸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보건의료 협동조합 및 공공의료 운동을 전개하다가 1966년 8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샤디드는 자신이 속한 의사들의 세계에선 ‘볼온한 이단아’였지만, 다수 시민들에게는 공공의료 및 협동조합 보건의료의 씨를 뿌린 ‘민중을 살린 개혁가’로 평가받았다.
박홍규/인물과사상사/1만8000원
영남대 명예교수인 박홍규 박사는 신간에서 샤디드를 비롯한 현대사 속 이단아 57명의 삶과 사상, 문학과 예술을 간명하게 소개했다. 소개된 인물들은 시대와 세상 대세나 조직 이기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더 큰 대의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신부이자 사상가였던 이반 일리치도 샤디드에 뒤지지 않는다. 1956년 푸에리토리코 가톨릭대 부총장에 임명된 그는 사제 훈련센터를 설립하는 등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갔지만 종교가 정치에 뛰어들면 안 된다며 ‘기독교당’ 결성에 반대했다. 게다가 가톨릭이 반대한 산아제한 정책에 찬성하면서 부총장직을 그만둬야 했다. 1961년부터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대안적 학문 공동체인 ‘국제문화형성센터’를 세우고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한편, 미국의 패권적 행보를 지지하는 로마가톨릭에 대해 ‘문화제국주의’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결국 1968년 종교재판에 가까운 심문을 받은 뒤 이듬해 ‘정치적 부도덕’을 이유로 사제직에서도 쫓겨났다. 그는 당시 무기를 든 카밀로 신부와 해방 사상가인 카마리 신부와 함께 가톨릭 내에서 위험한 신부로 분류돼 왔다.

사제직을 박탈당한 일리치는 이후 강의와 저술을 이어가면서 교통체계를 비판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과학기술 사회를 꼬집은 ‘절제의 사회’, 의료제도를 비판한 ‘병원이 병을 만든다’, 전문가주의 사회를 질타한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 등을 펴내며 권력과 엘리트 전문가주의를 내부 비판했다. 2002년 독일 브레멘에서 76세의 나이로 숨졌다.

학계 엘리트주의와 학맥주의를 비판하고 천박한 종파주의 속물근성을 거부해온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삶과 사상도 경이롭다. 1961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레이버는 뉴욕주립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하고 2년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연구한 뒤 1998년부터 예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제명된 제자를 지지한 데다가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반대 시위 이후 각종 시위에 참여한 이력 때문에 2005년 예일대학에서 해고되고 만다.

그레이버는 2008년부터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 런던정경대학원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관료제 유토피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불쉿 잡’ 등을 잇따라 펴내면서 전문가나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2020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책에는 이밖에도 대중 매체가 아닌 1인 미디어를 설립해 독립 기자의 길을 굴하지 않고 걸어간 이지도어 F 스톤, 불꽃처럼 살다간 여성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 등의 삶을 훑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묻는 것 같았다. 지금 이단아가 될 준비가 됐느냐고. 우리가 아닌, 당신과 나에게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단아의 뜻은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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