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전망 좋은
창문밖 풍경이 사라져 안타까워
이디스 워튼, <맨스티 부인 방의 전망> (‘제인의 임무’에 수록, 정주연 옮김, 궁리)
일요일 오후에 블랙 부인은 맨스티 부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들을 들어주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외출을 자주 할 수 없어서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며, 증축되면 자신의 방 창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일 테니 그 일을 멈춰주었으면 한다는. 그렇게 해주면 재산의 절반을 드릴 수 있다고. 작가는 이 장면에서 시점을 옮겨 블랙 부인의 눈으로 맨스티 부인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도 안타깝지만, 이 대면 장면에서는 블랙 부인의 눈으로 맨스티 부인을 그릴 수밖에 없다. 만약 시점을 전환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블랙 부인이 맨스티 부인을 “저 늙은 여자가 미쳐버린 줄은 꿈에도 몰랐네”라고 말하는, 약속이 아니라 그녀를 속인 것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가끔 맨스티 부인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전망이 보여야 할 곳에 전망이 없을 때. 같은 곳에서 수십 년째 살고 있지만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등나무가 봄마다 담장에 화려하고 푸르게 피던 이웃집이 오층 다세대주택으로 변모하면서 늘 보아온 하늘의 평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느낄 때. 까치발을 들어도 더는 관악의 풍경을 볼 수 없어졌을 때마다. 전망은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왜 누가 큰손으로 한 움큼씩 퍼내 가듯 사라져가는 것일까.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맨스티 부인처럼 지루하고 평범한 그 속에서도 볼거리를 찾아보려고 애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특히 화요일에. 강의실은 지하 3층인데 두 벽면에 검은 창이 있고 커튼까지 쳐져 있다. 열 수도 밖을 내다볼 수도 없는 공간. 그럴 땐 얼른 몸을 돌려 맞은편을 본다. 집중해서 책을 읽는 학생들의 등. 이게 화요일의 전망(展望)이며 또 다른 전망(前望)이라고 여기면서.
월요일 아침에 맨스티 부인은 공사 소음 때문에 잠이 깨고 말았다. 한평생 익숙해진 절망감이 다시 찾아왔고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눈 뜨고 볼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이제 부인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3층 구석방 창가에서 전망과 동시에 생명도 잃어가는. 어쨌든 증축공사는 시작될 것이다. 누가 증축을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니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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