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긴장을 긴장으로 푸는 방법
휴식한다고 힐링되지 않아
주변 상황·시간 잊을 정도로
몰입 통해 행복 느낄 수 있어
오래전 어느 드라마에서 탤런트 김혜수가 ‘엣지(edge)있게’라는 말을 써서 유행시킨 적이 있었다. 우리말로 바꾸면 ‘날이 서 있게’ 정도일 텐데, 신경이 날카롭다는 게 아니라, 옷차림이나 태도, 일 처리에 전문성이 느껴지고 허술한 구석이 없다는 뜻이다. 엣지있게 근사하다는 게 어때야 하는지는 뚜렷한 답은 없다. 허름한 가방을 하나 둘러맸는데, 그게 유난히 지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도 있고, 깔끔한 셔츠 하나로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억지스럽게 튀지 않고, 보는 이를 살짝 긴장시킬 때 우리는 그걸 엣지있다고 표현한다.
안도 다다오는 미술관 방문객이 미술만의 장소로 진입하여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를테면 입장하면서 바로 전시장으로 들어서지 않도록, 높은 노출 콘크리트 장벽을 따라 하늘만 보며 좁다란 통로를 걸어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우환 역시 관람자들이 “내 작품 앞에서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 자신에게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고 소망을 밝힌다. 그러니 두 거장은 각자 미학적으로 추구하는 바와 스타일이 잘 맞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우환은 굵은 붓으로 단 한 번 짤막하게, 고도의 집중력으로 한 획을 내리그어 그림을 완성한다. 단순하지만 밀도 높은 시간이 만들어낸 붓자국을 볼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잠시 멈추게 된다. 그곳엔 일말의 흐트러짐도 허하지 않으려는 엄격한 태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힐링에 주력한 콘텐츠가 우리 주변에 흔해졌다. 어렵거나 복잡한 일을 피하고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편안한 상태에 저절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은 어떤 긴장을 겪은 후 그 결과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근육도 운동을 통해 긴장했다가 이완할 때, 피곤이 해소되면서 기쁨이 발산되는 것이지, 긴장해보지 않은 근육을 마냥 이완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몰입의 즐거움’을 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위태로운 경험이나 강도 높은 집중 후에 안도감과 만족감이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주위 상황과 시간을 잊을 정도로 몰입하는 경험을 삶이 고조되는 순간이라고 일컬으면서, 사람들은 몰입을 통해 비로소 행복을 실감한다고 지적한다. 외과의사가 길고 복잡한 수술을 깔끔하게 마친 후처럼, 암벽 등반가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긴 후처럼, 스트레스와 고통이 지나간 다음에 마치 막혀 있던 물이 터져 흐르듯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 막힘없고 거침없이 물이 흘러가는 상태(flow)가 바로 몰입의 즐거움이란다.
간혹 내가 내 안에서 전부 흩어져 버린 듯 산만하고 공허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단지 접근하기 쉽다는 이유로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는 힐링의 체험으로 나를 채우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긴장을 긴장으로 해소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근사하다고 여기며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에는 반드시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가 내재해 있다. 정신의 에너지를 한곳에 모아주길 요구하는 이우환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예찬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닐까.
이주은 건국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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