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남편 죽이는 법
[경향신문]
“… 결혼이란 건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잔인한 구속이에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닌가요?” “사랑이오? 글쎄요. 그건 착각이었어요. 사랑이라고 믿었던 거죠.” 서미애 작가의 소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자백한 주인공이 형사와 나눈 대화이다. 매순간 남편을 죽이는 상상을 하는 아내는 한 달간 매일 가계부에 남편을 죽일 방법을 한 가지씩 적어놓는다.
미국에서 <당신의 남편을 죽이는 방법(How to Murder Your Husband)>이라는 소설 내용이 현실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설을 쓴 낸시 크램튼 브로피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19일 전했다. 브로피의 남편은 4년 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요리학원에서 두 차례 총격을 받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브로피가 총기 부품을 교체하고, 목격자가 없을 때를 택하는 등 혐의를 피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동극 작가의 <남편 죽이는 15가지 방법>은 역설적이다. ‘고기요리에 백설탕을 듬뿍 넣어 먹여라’ ‘못 걷게 하라’ ‘시멘트 집에서 살게 하라’ ‘전자파에 많이 노출시켜라’ 등의 방법이 있다. 한집에 살면서 남편에게만 적용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권고이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계곡살인’과 몇 년 전부터 잇따라 발생한 ‘니코틴살인’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훨씬 더 많다. 소설 소재로 남편 살해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의전화가 2021년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여성 83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됐다. 가해자는 남편이 36명, 데이트하는 사이가 46명(기타 1명)이었다. 살인이 미수에 그쳐 목숨을 구한 여성은 177명이었다. 최근 13년간 여성 살해 피해자는 1155명, 살인미수는 2298명이었다. 1.4일마다 한 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숨지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여 있다. 언론 보도만 집계한 통계여서 실제 피해는 더 많을 것이다.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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