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군상'의 미래, 하나가 아니었어[책과 삶]
[경향신문]
…스크롤!
정지돈 지음
민음사 | 204쪽 | 1만4000원
기존 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따르지 않는 독특한 전개가 특징인 정지돈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팬데믹 유행으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흐른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았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줄기로 전개된다. 한 줄기에서는 물리적 현실보다는 증강·가상 현실에 기반을 둔 복합문화단지 ‘메타플렉스’에 소속된 서점 ‘메타북스’ 점원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줄기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음모론을 파괴하기 위해 창설된 초국가적 단체 ‘미신 파괴자’ 소속 대원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래가 배경이지만 여타 SF소설 같지는 않다. 인물들은 음모론이 생성되는 가상 서버에 접속하기 위해 마약 캔-D 3000㎎을 주입하고, 실제를 넘어 증강현실 속에서 모임을 구성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작품을 넣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 “학교에 불을 지르거나 하버드에 가거나”를 고민하는 대학원생이 등장한다. 미디어에서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삶이 혼종처럼 엮여있다.
읽는 맛이 없지 않으나 상황 설명이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프랜과 정키, 지우 등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떤 관계 속에서 무엇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하긴 어렵다.
각각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뒤섞고 생략하거나, 인과관계 없이 파편적으로 나열된다. 책은 분화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란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한다.
정지돈은 ‘작가의 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 했는데, 미래 역시 예상과 설명 대신 각각의 실천을 통해서 구현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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