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에 낄 염려 없는 스커트의 탄생처럼..소수자를 위한 창작으로 세상을 바꾼다[화제의 책]
[경향신문]
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 304쪽 | 1만6000원
사와다 도모히로는 2004년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1년간 영업을 하다가 사내 시험을 통해 소망하던 카피라이터가 됐다. 승승장구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번화가 시부야역의 간판에 그가 지은 카피가 적혔다. 그가 기획한 텔레비전 광고가 8000만명에게 도달하기도 했다. 결혼을 했고 2013년 아들을 낳았다. 잘 먹고 잘 울고 잘 웃는 아이였지만 어딘지 이상했다. 3개월 만에 어린이병원에서 시각에 선천성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 수술을 했지만 아이는 평생 앞을 볼 수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사와다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와다는 끝내지 않았다. 일이 손에 익어 잘나갔지만 마음 한 구석엔 어딘지 불편함을 느끼던 차였다. 야근을 하며 자료를 뒤지다가 ‘이 일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거더라?’라는 ‘금단의 질문’이 떠오르는 일이 잦았다. 자신이 만드는 광고가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회의하는 날도 있었다. 아들의 장애는 오히려 사와다가 ‘마이너리티 디자인’을 추구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돌아보면 사와다도 소수자였다. 부모님을 따라 해외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자랐기에 현지 아이들과 좀체 어울리지 못했다. 운동도 지지리 못했다. 아들의 일을 계기로 장애인들을 만나다보니 오히려 ‘새로운 발견’이 가득했다. 광고란 본질적으로 ‘제약’을 염두에 둔다. 15~30초에 광고주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제약’을 ‘날개’로 바꾸는 것이 창작자의 일”이라면 제약 있는 소수자를 위한 일에서 얼마든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와다는 패션기업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와 함께 장애인 패션을 기획했다. 스커트를 입고 싶은데 착용이 불편하고 휠체어 바퀴에 낄 우려 때문에 좀체 시도하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었다. 반년의 디자인 끝에 지퍼를 활용해 타이트스커트도 되고 플레어스커트도 되는 옷을 만들었다. 타이트스커트로 입으면 바퀴에 낄 염려가 없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면 지퍼를 풀어 플레어스커트로 활용한다.
책은 사와다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고령 지자체로 유명한 고치현에서 평균 연령 67.2세의 할아버지 팝그룹을 탄생시켰고, 의족을 당당히 드러낸 패션쇼를 기획했다. 장애가 있건 없건, 운동을 잘하건 못하건 모두가 참여해 웃고 즐길 수 있는 ‘유루 스포츠’도 만들었다. 애벌레 같은 경기복을 입고 뒹구는 ‘애벌레 럭비’, 잘 미끄러지는 비누를 손에 칠하고 경기하는 ‘핸드소프볼’이 유루 스포츠 대표 종목이다.
안경이 개발되기 전 눈이 나쁜 사람은 장애인이었지만, 오늘날 안경은 개성이다. “소수자를 기점으로 삼아 세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바꾸자”는 것이 사와다의 인생 목표다. 사와다의 개인사를 드러낸 에세이인 동시에, 작업 방법론을 알려주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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