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아픔이 예술에 남긴 것

한겨레 2022. 5. 20. 19: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보테로 미술관을 다녀왔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몇주 전에 아흔살 생일을 맞았다.

그의 고향에서는 생일까지 1년을 '보테로의 해'로 지정해서 기념했다.

식민지의 경험과 서구 문화의 이식을 경험한 나라의 예술가가 그 이식한 맥락 속에 자신의 얼굴을 살며시 얹어본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여행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보테로 미술관을 다녀왔다. 페르난도 보테로는 몇주 전에 아흔살 생일을 맞았다. 그의 고향에서는 생일까지 1년을 ‘보테로의 해’로 지정해서 기념했다. 그는 자신의 회화와 조각, 그리고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모은 베이컨, 발튀스, 피카소, 샤갈, 미로, 모네, 로트레크, 보나르, 데부탱, 피사로, 르누아르 등의 작품을 함께 기증해 미술관을 만들었다. 기증의 조건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는 것. 스무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내게도 혜택을 주었다. 미술관 산책만으로 현대미술 100년이 감각적으로 정리된다.

다채로운 색을 써서 관능적이고 풍만한 인물을 그린,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보테로의 스타일. 캐릭터일 뿐이라고 폄훼당하기도 했다. 라파엘로나 얀 반에이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작품들을 재해석한 작업들을 ‘키치’라고 평가절하하는 비평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와 역사의 맥락 위에 얹은 과장된 인체 비례, 표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 절제된 움직임 등은 제도화된 규범을 조롱하고 마약과 내전에 시달리는 콜롬비아 국민들의 고통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술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폭신함 속에서 잠깐 쉬게 만들어주지만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남미를 다녀온 ‘기념’으로 다시 들춰보는 마우리시우 지 소우자의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 명화 여행>. 보테로와 또래인 이 브라질 만화가는 반세기 넘게 장수한 캐릭터 모니카를 만들어냈다. 달리기도 잘하고 힘도 센 일곱살 소녀는 늘 파란색 토끼 인형 삼손과 함께한다. 그의 절친 매기, 그 둘을 골려보려는 지미 파이브와 스머지, 척척박사 프랭클린과 무엇이든 현실로 만드는 마법의 펜을 가진 마리나. 그가 만든 만화 속의 인물들이 미술사에서 유명한 작품들 속에 들어간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모니카의 탄생>이 되고 카라바조의 <바쿠스>가 술을 마시는 장면이 먹보 <매기>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다시 탄생한다. 지미 파이브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으로 들어가 아담이 되고, 스머지는 마네의 <비눗방울 부는 소년> 역할을 한다. 프랭클린의 역할은 렘브란트의 <롤프 박사의 해부학 교실>에 들어가서 토끼 삼손을 해부하는 것. 신윤복의 <단오풍정> 속에서 모니카의 친구들이 물가에서 세수하고, 그네 타고, 쑥덕쑥덕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테로의 <모나리자>, 소우자의 <모나리자>를 보고 난 뒤에, 이들의 작업이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남미의 작가들은 꾸준하게 서양의 미술사 안에 자신들이 창조한 인물을 대입하면서 발생하는 ‘낯섦’이 주는 효과를 의식했다. 식민지의 경험과 서구 문화의 이식을 경험한 나라의 예술가가 그 이식한 맥락 속에 자신의 얼굴을 살며시 얹어본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 철학부터 배운 한국의 철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양철학의 맥락 위에 놓아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문제나 맥락들이 이야기를 살짝 꼬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틈에서 발생하는 마찰이 어색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찾고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