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경호 어쩌나"..  '대통령실 앞 집회 허용' 법원 결정에 난감한 경찰

손효숙 2022. 5. 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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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경호처 '특별 경비구역 지정' 여부 촉각
경비구역 지정 땐 집회 금지 입장 고수할 수도
"국민 기본권인 집회 자유 침해" 비판은 부담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설치된 바리케이드의 모습. 뉴스1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21일 당일에도 대통령실 인근 집회가 허용돼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오면서 경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찰은 특별 경호구역 지정 권한을 가진 대통령경호처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기간에 대통령실 인근을 경호구역으로 설정한다면 기존 집회 금지 방침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럴 경우 법원 판단을 무시하고 시민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어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과 경호처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머무는 20~22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국방부 담장 기준 반경 100m 이내를 경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에 신고된 집회는 전부 금지 통고 처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이런 방침의 법적 근거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아닌 대통령 등의 경호에 대한 법률(대통령경호법)을 들고 있다. 대통령경호법 5조에 따르면, 경찰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호처가 지정한 경호구역에서 질서 유지, 출입 통제 등을 할 수 있다.

양국 대통령 경호는 대통령경호처와 백악관이 1선경호(밀접경호)를 맡고 경찰이 2·3선 경호를 맡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빈 경호등급 가운데 최고인 A등급 경호 대상이다. 그런 만큼 각종 돌발 상황을 통제하면서 경비를 강화하려면 대통령 집무실 인접 구역을 경호구역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경찰 입장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호처의 최종 판단이 남았지만 경호상 안전을 위해 국방부 울타리 100m 선이 경호·경비의 마지노선이라는 데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외국 정상 방문과 같은 중요한 경호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선이 깨지면 아무리 많은 경비 인원을 투입한다고 해도 통제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 21일자로 개최 신고된 주요 집회·시위 현황. 국방부 정문 앞과 전쟁기념관 앞 등에 집회 신고를 냈다가 금지 통고를 받은 참여연대는 20일 법원 결정에 따라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전국민중행동도 참여연대와 연대해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경찰에 따르면 20~22일 국방부 담장 100m 이내에 신고된 집회는 참여연대의 21일 국방부 및 전쟁기념관 앞 집회를 포함해 모두 9건이다. 경찰은 이미 해당 신고자 전원에게 집회 금지를 통고한 상태다. 하지만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참여연대가 서울 용산경찰서의 집회 금지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21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쟁기념관 앞 인도와 하위 1개 차로에서 집회를 여는 조건이다.

경찰은 경호구역 설정에 대한 경호처의 최종 결정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가처분 결정과 무관하게 집회 불허 방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경찰은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회 금지 처분을 계속하겠다는 기존 방침 △대통령경호법에 근거 규정이 있다는 새로운 논리를 근거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집회 금지가 현실화할 경우 법원 판단을 무시한 월권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앞서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의 옥외 집회를 금지한다'는 집시법 11조에 대해 '집무실도 관저에 포함된다'는 해석을 내리고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금지했지만, 법원은 이달 11일 경찰의 해석을 뒤집고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14일 집회를 허용했다. 이를 두고 경찰이 자의적 법률 해석으로 국민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거듭된 법원 결정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집회 금지 방침 고수가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도 피하기 힘들다. 참여연대 측은 이날 법원 결정 직후 "경호상 집회 제한 필요성이 있더라도 일률적으로 대통령실 앞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경찰은 금지 통고를 취소하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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