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지현 '임을 위한 행진곡' 커닝 논란
기성세대 진영 떠나 이해하고 관용해야
기성정치와 다른 솔직, 당당함에 기대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이, 시간의 거리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수년 전 언론사 시험에 박종철 이한열 두 열사를 지금 시대에 소환해 가상 인터뷰를 해보란 문제가 나왔는데, 두 열사를 노동운동가로 표현한 답지들이 제법 있었다. 86세대들이 6·25전쟁을 먼 과거의 비극으로 여기듯 6·10민주항쟁은 응시생들로선 태어나기 한참 전 일이었던 것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계 인사는 이야기를 듣고 한술 더 뜬 2030 이해하기를 소개했다. 청년들에겐 6·25전쟁이나 6월 민주항쟁 모두 시기를 구분하기 어려운 과거 역사일 뿐이라는 얘기다. 정말 경험하지 않은 70년 전과 40년 전의 일을 분간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박지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임을 위한 행진곡’ 커닝 논란도 그런 점에서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그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잠깐 팸플릿을 보며 노래 부른 것을 놓고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비판이 쇄도한 것인데 기실 노래를 외우지 못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만들어져 불리며 운동적 열정을 폭발시켜 온 민중가요다. 3년 전 홍콩 시위대가 개사해 불렀을 만큼 이탈리아의 벨라차오처럼 여러 나라에서 불리고 있다.
하지만 1996년생인 박 위원장이 그 가사를 외우지 못한다고 비난한다면 이 시대 청년들을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86세대가 대학 졸업 후 나온 민중가요 가사들을 모르고, 3040세대가 가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라는 예의 저격하는 인사들이야말로 청년세대 정치인을 관용적으로 보지 않는 구세대에 가깝다.
같은 20대인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의 참담, 참혹, 무성의란 비난이 아프긴 하다. 다만 박 위원장은 마스크를 써서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을 그리 하지 않았다. 방송에 출연해 “(팸플릿을) 한 2초가량 본 건데, 사진이 찍혔더라”며 커닝을 시인한 데선 되레 기성정치에 없는 신선함이 보인다. 분노와 조롱, 상대를 비트는 궤변 능력이 중요한 정치판에서 청년세대에 기대를 걸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번 대선을 비롯해 역대 선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 부르지 못할 수 있는 청년들이 뒤흔들었다. 기성세대는 청년세대를 ‘88만 원 세대’란 고루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2000년대 들어 선거에 나타난 세대 구도를 이끈 주역들은 청년세대였다. 선거판에서 이들의 파워는 막강했는데 정치학자 고원은 노무현 바람이나 이명박 정부의 촛불집회,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것도 청년세대였고, 촛불혁명에서도 이들이 전초병이자 주력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19세, 비정규직, 컵라면’이란 구의역 사고가 상징하는 젊은 세대의 고통과 좌절을 해결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에 먼저 등을 돌린 것도 이들 청년들이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경우 많은 패배 원인이 있겠지만 2030세대의 소구에 더 빠르게 대응했더라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했다.
세상 변화를 주도해온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최근 트위터에 공화당에 투표하겠다며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 진보가 너무 왼쪽으로 가는 바람에 그가 서 있던 곳이 중도보수로 바뀌었다고 했다. 많은 비판 댓글 가운데 “당신도 나이 들어가고 있는 거야”라는 반응은 가장 아팠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머스크마저 나이 50을 넘은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나이가 들수록 기득권화하고 정체성이 쇠퇴하는 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을 피하려면 새로운 것, 새 세대를 수용하는 것이 맞다. 나이 들었으니 물러나라는 게 아니라 진영과 관계없이 젊은 청년들의 등장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얘기다.
이태규 논설위원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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