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인간 공존하려면.."살충제 줄이고, 야생벌도 보호해야"
[경향신문]
“오래된 주택가와 빌라촌 주변의 벌통에서 꿀벌들이 시골보다 더 많은 꿀을 모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도심에서 알게 모르게 심은 식물들이 벌들의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도시양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 어반비즈의 박진 대표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꿀벌과 야생벌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 모색 토론회’에서 오래된 주택가와 빌라촌 등에서 주민들이 키우던 식물들이 인간과 꿀벌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재개발로 인해 오래된 주택가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늘어난 것도 도심의 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기존의 주택가, 빌라촌에서는 큰 대야에 흙을 채우고, 꽃을 키우는 사례들이 많았는데 이런 빌라촌에서는 벌들이 다른 지역보다 평균 2배 많은 꿀을 모았다”며 “이런 지역에 벌들의 먹이가 오히려 시골보다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벌들이 채집한 꽃가루를 분석해 보니 120종이 넘는 식물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서울환경연합과 생명다양성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이날 토론회는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을 맞아 국내의 꿀벌과 야생벌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겨울 발생한 꿀벌의 대량 폐사를 계기로 생태계에서 화분 매개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과 야생벌들이 처한 상황을 점검하고,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 위한 토론회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월동 중이었던 꿀벌의 폐사 피해는 약 78억마리로 추정된다. 전체 2만3582개 양봉 농가의 18%가량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역시 사례 발표자로 참여한 양봉가 김일숙 더비키스 대표는 꿀벌 실종에서 지나치게 많은 살충제 사용이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는 “농민들이 응애를 죽이는 용도로 쓰는 살충제는 스틱 형태로 벌통 안에 끼워넣기만 하면 되는데 매년 계속 넣다보면 응애가 내성이 생겨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응애가 내성이 생겨 계속 기생하면 벌들이 약해진다”며 “이런 상태에서 겨울에 햇빛이 좋은 날 벌들이 벌통 밖으로 나갔다가 기운이 없어서 못 돌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벌들이 벌통 주변 논밭에서 사용하는 농약이 섞인 물을 마시고 죽는 경우도 많다”며 “농민들이 농약 없이 농사를 짓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봉하는 이들이 벌을 더 튼튼하게 키워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벌을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살충제 대신 개미산을 사용해서 응애를 퇴치하고 있다”며 “처음 양봉을 시작할 때는 모두가 살충제 없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벌을 잘 키우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개미산은 다른 살충제와 달리 응애 등 해충에게 내성이 생기지 않는 화학물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양봉 농가가 키우고 있는 꿀벌뿐 아니라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보다 먼저 꿀벌 군집의 붕괴현상을 겪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람이 키우는 꿀벌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호박벌, 뒤영벌, 애꽃벌, 땅벌, 호리병벌 등 다양한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이날 기조발표자로 나선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유럽연합에서는 꿀벌과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운동의 결과로 벌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가 금지된 바 있다”며 “국내에서도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 사용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시 기조발표자였던 이홍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꿀벌과 야생벌을 보호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들로 살충제 사용을 줄일 것과 도시공원 등을 인위적으로 조성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흙길을 만들 것 등을 제안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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