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장소·사람·세상에..남겨진 것들의 의미

박대의 2022. 5. 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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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박물관 / 스벤 슈틸리히 지음 / 김희상 옮김 / 청미 펴냄 / 1만7000원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그 자리에 남긴다. 어디에 있었든, 어디로 갔든, 인간이 가는 장소에는 언제나 그 이전과 이후가 있다. 자신이 남기는 흔적이지만, 인간은 대체로 그것을 스스로 볼 수는 없다. 자신이 있던 곳에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는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아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지만 소용이 없다. 초당 600개, 분당 4만개, 하루 약 5000만개의 세포가 우리 몸에서 이탈하는 자연의 섭리를 중무장으로 이기기는 어렵다. 피부에 사는 박테리아도 체취를 만들어내며 인간의 흔적을 남기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서울 남산 위 철조망에 걸린 자물쇠나 식당 한편에 쓰인 낙서들은 조금이라도 눈에 띌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남으려는 인간의 욕망일지 모른다. 태초에 인간이 동굴과 암벽에 남겨놓은 그림도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 속에 인간의 크기는 그의 권력의 정도를 나타냈고, 옆에 있는 동물들은 그의 성취욕을 상징했다. 스마트폰으로 직접 자신을 찍는 '셀피(Selfie)'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르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가장 최신의 방식이다. 함께 있었던 사람에게는 서로의 체온을 남기고, 생을 마감할 때는 유서를 남긴다. 인간의 삶 속에 흔적이 남지 않는 순간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이 없는 세상이 계속 돌아갈 것이라는 것도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훗날 같은 곳을 찾는 사람에게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존재의 박물관'의 저자 스벤 슈틸리히는 언론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주변 사람들이 남긴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장소와 사람, 세상 등 인간이 떠나는 순간을 3부로 나누어 사람이 남기는 흔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우리 존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탐색해간다. 고서적을 들추고, 그림을 감상하고, 고대의 길이 흔적을 드러낼 때까지 지도를 들고 거리를 헤매면서 인간이 남긴 흔적의 다양함을 찾아간다.

저자는 이 책에 '일상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호소'를 담았다고 말한다. 과거 흔적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남기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 현생의 본질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에 남은 흔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한다면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 여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인간의 흔적은 역사이고, 그것에 다가갈 때 현재를 바라볼 안목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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