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경영계, '주52시간 유연화' 요구 속 '사각지대'도 살펴야

최희정 2022. 5. 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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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영계가 분주하다. 특히 노사관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 ‘노동개혁’ 주장에 적극적이다.

‘노조의 정치화, 본사 불법 점거, 집단적 폭력’ 등은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개정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11일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1일 근로를 8시간, 주당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총은 연구개발(R&D), 고소득·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연장근로를 1주 단위 제한에서 월이나 연 단위로 개선하는 등의 내용을 제도개선 방향으로 내놨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은 노동자들이 과연 경영계의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할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경영계가 윤석열 정부에 ‘주52시간제’ 유연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노동자들은 과거처럼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이 같은 우려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 소속의 한 노동자는 “중소기업 사장 말만 듣고 이러는 것 같은데, 사무직 근로자들 의견은 들어본 것인가.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제조업, IT 근로자 워라밸이 얼마나 좋아졌는데…”라고 했다.

우리 역시도 주52시간제 시행으로 그나마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느낀다. 주52시간제 시행 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때는 어떻게 했는지”라는 생각이 든다.

주52시간제가 시행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 중 하나다. 멕시코가 연평균 노동시간 2137시간(2020년 기준)으로 1위다. 우리나라는 1967시간으로 2위다.

OECD 국가 연평균 근로시간이 1726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근로자는 OECD 회원국 근로자보다 한해 241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으로 ‘일개미’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던 일본은 OECD 연평균 근로시간보다 낮은 1644시간이었다.

주52시간 근무제는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기관부터 적용됐다. 2020년 1월에는 50~300인 미만 중소 사업장, 지난해 7월부터 5~49인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본격 시행된 지 2년이 넘었다. 아직은 제도가 정착됐다고 볼 수 없는 초기다.

사실 주변에서는 주52시간제 시행에도 불구, 여전히 초과 근무를 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IT업계에서는 초과근무가 여전하고, 파견 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주52시간제가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한 IT업계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공공기관 직원들 본인은 ‘주52시간’을 지키지만, 이들이 부여한 업무량은 매일 초과 근무를 해야 간신히 끝낼 수 있다”며 “우리는 대기업·공공기관과 함께 현장에 나와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초과근무를 한다고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주52시간제의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한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제도 시행 초기에 ‘주52시간 유연화’만 앞세우는 것은 주52시간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토로하는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제 때문에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일까? 주52시간제를 손봐서 초과 근무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장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잖아도 열악한 처우로 구직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경영계가 주52시간제 유연화를 요구하려면 목소리만 내기보다는, 노동계와 충분히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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