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4번 매력 잘 풀어낸 서울시향..용재오닐에도 갈채

김용래 2022. 5. 20.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음향 안정되고 악상 잘 통제..벤스케 지휘에 시향 눈에 띄게 성장
용재오닐 '젊은 예술가의 영웅적 초상' 세계 초연..화려함 대신 조화 방점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19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오스모 벤스케가 이끄는 서울시향의 또 하나의 시벨리우스 교향곡이 무대에 올랐다.

메인 프로그램은 시벨리우스의 일곱 개 교향곡 가운데 가장 난해하고 인기가 없는 4번이었다.

이 작품이 주는 난해한 인상은 실은 기존 작법을 벗어나 도약하려는 작곡가의 몸부림의 결과였다.

보통의 감상자들은 선율이 두드러지고 리듬이 선명하고 화성이 극적으로 펼쳐지는 음악을 친숙하게 느낀다. 그런데 시벨리우스의 4번은 러시아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작곡된 1, 2번은 물론이고 민속적이지만 시벨리우스 본연의 작풍을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3번에 비해서도 상당히 실험적이다.

작품을 끌어가는 주된 요소가 음층들 사이의 충돌과 어울림, 그 미묘한 교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선율을 찾아 들으려는 감상자는 미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실은 아주 매력적이다. 익숙한 선율·리듬·화성 중심의 듣기를 벗어나 새롭게 듣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그간 국내 콘서트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운 시벨리우스의 세계를 잘 전달해 주었다.

1악장의 위압적인 첫 주제부터 장대하고도 어두운 북구의 자연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내리누르는 저기압과 같은 이 음층은 서로 어긋났다가 포개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래서 마치 먹구름이 서로 부딪힐 때 굉음이 나듯이 불협화음을 내다가도 언뜻언뜻 햇살이 그사이를 뚫고 나오는 듯한 협화음이 내비치기도 한다.

이러한 미묘한 음층의 교차를 잘 드러내려면 큰 흐름을 잡은 채 디테일을 그려내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 아래 서울시향은 이 지점에서 그동안 많은 발전을 보여줬다. 또 불협화음에서의 팽팽한 긴장감과 협화음에서의 해소도 거칠지 않게 잘 표현됐다.

전반적으로 시벨리우스의 변화된 인상주의적 어법을 오케스트라는 훌륭하게 들려줬다. 긴 호흡의 지속음을 자주 내야 하지만, 전반적인 음향에 안정감이 있었고 악상이 잘 통제되어 있었다. 민속적인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2악장에서도 처음의 상냥한 춤곡 부분이 다른 정적인 부분에 비해 도드라졌다.

명상적인 아다지오인 3악장에서는 마치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이 음향이 촘촘해졌다가 다시 성기게 되는 과정이 잘 표현됐다. 첼로 솔로 장면을 비롯해 순간순간 선율적인 대목들, 예를 들어 클라이맥스 부분의 낭만적 고조 등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2악장의 춤곡을 연상시키는 4악장 부분에서는 1, 3악장의 자욱한 안개를 뚫고 다시 한번 생명력이 약동한다.

전곡의 연주에서 타악이 잠시 집중력을 잃은 대목이 있었지만, 민속적인 클라리넷 악구, 첼로와 바이올린이 서로 주고받는 대목, 호른과 오보에 등 다른 솔로 부분들이 모두 훌륭하게 표현됐다. 비록 낯선 곡이었지만 관객들은 벤스케와 서울시향을 통해 시벨리우스 4번의 음향 세계를 제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2부의 첫 곡은 일본계 미국 작곡가인 폴 치하라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위해 쓴 신작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젊은 예술가를 위한 영웅적 초상'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전체 4악장으로 돼 있으며 다채로운 인상을 남겼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크레디아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1악장은 명상적이고 사색적이다. 비올라 솔로는 높은 음역에 있지만, 그보다 더 높은 현악의 수식을 받아 담담한 고백의 정조를 띤다. 반대로 2악장은 타악기의 굉음이 마치 전쟁과도 같은 공포, 고통의 순간을 그리는 듯하다.

그러다가 작품에는 우리 민요 아리랑의 선율이 도입된다. 고통 속에서 제 뿌리를 찾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3악장은 깊고 내면적인 악장인데, 특별히 다양한 솔로 악기들과 비올라가 실내악적으로 어우러지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4악장은 아리랑과 로큰롤이 어우러져 리드미컬하며 다시 첫 악장의 주제로 회귀한다.

독주를 맡은 용재 오닐은 시종 탁월한 기교와 밀도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솔로 부분과 합주 부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 이음매를 매끄럽게 메웠다. 독주로서의 화려함보다는 전체와의 어우러짐을 방점에 둔듯했다.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아리랑 선율과 작품의 다채로움, 용재 오닐의 훌륭한 연주로 이 초연작은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주회의 마지막은 스메타나의 유명한 교향시 '블타바'였는데 다소 아쉬웠다. 서울시향은 어딘가 급해 보였고, 너른 흐름과 잔물결의 디테일한 리듬을 동시에 품고 있는 악상을 부분적으로만 옮겨냈다.

또한 이 강물이 흘러가며 점점 나아가 마지막 민족의 고성인 '비셰흐라트'에 다다르는 클라이맥스 대목에 에너지가 모이지 못했다. 앞에서 대곡을 모두 연주한 탓에 집중력이 유지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뜻깊은 세계 초연 무대와 밀도 높은 시벨리우스를 생각하면 충분히 갈채와 격려를 받아 마땅한 공연이었다.

yonglae@yna.co.kr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