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 논비건 장벽 허물기.. 먼저 '차이'를 인정하라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 멜라니 조이 지음 강경이 옮김 / 심심
육식주의는 억압적인 시스템
채식주의를 비정상으로 낙인
서로 옳다고 증명하는 논쟁은
이긴다고 해도 결국에 상처만
상대 배려하는‘역지사지’필요
건강한 관계 심리학 집중 분석
한 여성이 고기 먹기를 거부한다. 남편은 갑자기 달라진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처가에 도움을 청한다. 이런저런 훈계가 무효하자 친정아버지는 끝내 딸의 뺨을 때리고 억지로 입을 벌려 고기를 쑤셔 넣었다. 친정엄마는 한약이라고 속여 흑염소 즙을 기어이 먹이려 한다. 두 사람은 오로지 고기를 먹는 ‘정상’ 상태로 딸을 돌려놓고 싶은 것이다. 2016년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한 대목이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최근에는 비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졌다. 하지만 소설 속 가족처럼 밥상을 마주하고 앉으면 공감대는 자취를 감추고 비건은 불편(불행)함을, 논비건은 서먹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비건 운동가 멜라니 조이의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는 불편함과 서먹함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건과 논비건 모두를 위한 ‘관계 심리학’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비건과 논비건의 불행과 서먹함이 ‘비거니즘’ 때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대개 “안정적이고 교감하는 관계에 필요한 기본 원칙과 기술”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기 먹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사실 비건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육식주의(carnism)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만든 말인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을 먹도록 사람들을 길들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 체계이자 이념”이다. 육식주의는 “억압적이고 닫힌 시스템”이면서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주류 시스템이다. ‘채식주의자’의 인물처럼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전 세계에 만연한 풍경이다.
비건은 “무방비 상태로 상처받기” 쉽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 특히 낭만적 파트너”가 자신의 신념을, 특히 함께 모여 있을 때 무시하거나 때때로 조롱할 때가 많다. 이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연민의 마음”이다. 서로 내가 옳다고 증명하기 위한 논쟁은, 이긴다고 해도 상처만 남는다. “상대가 겪는 경험의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 흔한 표현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은 비건과 논비건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다. 연민의 마음을 시작했다면 존중의 마음, 즉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까지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어수선함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가치 있게 여길 수 있게 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받아들일 때 관계에서 더 큰 안전을 느낄 수 있다.”
육식주의 때문에 사람들은 동물을 먹는 문제에 있어 자기 성찰을 하지 않도록 길들여졌다. 세상은 동물을 먹는 것이 “정상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고 여긴다. 이런 신화들 때문에 육식주의는 “사회구조 자체에 내장되어 규범과 법, 전통,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저자는 한 발 더 나간다. 육식주의는 “안타깝게도 인류 역사의 일부를 구성하는 수많은 잔혹 행위와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명토 박는다. 그런 의미에서 비거니즘은 “육식주의에 대항하는 시스템”이다. 비건이 아니더라도 비건을 받아들일 연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즉 연대자들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주류 시스템은 비건에게 섭식 장애가 있다는 등, 일종의 도덕적 혐오를 부추기며 공격을 일삼는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는 “만성적 갈등”이다. 만성적 갈등은 “너무 자주 반복되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형태”로, 실제로 비건이라면 “갈등을 풀려다 실패한 시도”가 무수히 쌓여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비건이든 논비건이든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만 있다면 갈등의 골을 하나씩 메울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개 토론이 아닌 논쟁을 하며, 서로에게 수치심을 준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려는 바, 즉 건강한 의도를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이 진정성을 표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잘 듣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비건을 위한 다양한 소통 방법 중 저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며 관계를 끝내는 법”이다. 함께하는 동안 배려하지 못했다고 “헤어질 때도 배려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는’은, 굳이 비건·논비건으로 한정 짓지 않아도, 삶을 직조하는 다양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충분한 지침서가 될 만하다. 388쪽, 2만2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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