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그린 캔버스.. 墓園 옆 미술관서 '삶·죽음의 경계'를 사유

장재선 기자 2022. 5. 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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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작가는 군부대에서 캔버스에 대포를 쏘는 과정을 거쳐 만든 ‘블랙 마운틴’과 ‘레드 마운틴’을 보며 “포에 찢긴 천 쪼가리가 너무 처참해서 색을 입혔다”고 했다.
김아타 작가가 모란미술관에 세운 캔버스. 2년 동안 나무 그늘 밑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

■ 모란미술관,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 ONNATURE’

2010년부터 美·印 등 곳곳에

캔버스 세워놓고 자연에 맡겨

12년 작업물 28점 뽑아 전시

전방 군부대 사격장에 설치해

대포를 쏜 후에 갈기갈기 찢긴

캔버스 조각 수습해 작품으로

“사진 작업 포기한 건 아닙니다”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유하고, 미술관은 그를 통해 새로운 30년을 꿈꾼다. 경기 남양주 모란미술관의 김아타 초대전 ‘자연하다 ONNATURE’는 경계를 초월해 존재의 비의(秘意)를 포착하려는 작가의 예술혼을 담고 있다.

19일 개막한 전시는 작가 김아타가 ‘온네이처(ONNATURE)’라는 주제로 12년간 작업해 온 결실을 펼쳤다. 전체 500여 점의 작품 중 28점을 뽑아 5개월간 선보인다.

올해 66세의 김아타에겐 ‘세계적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십수 년 전 미국 뉴욕타임스가 2페이지 특집으로 조명하고 빌 게이츠가 작품을 구입한 일 등으로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상업적으로 잘나가는 길을 저버리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로 들어갔다. 인류 문명과 관련된 세계 12개 도시를 주유하며 도시마다 사진 1만 컷을 찍고 그것을 중첩시켜 한 컷으로 만든 ‘인달라’ 시리즈에 천착한 것. 도시의 형체가 사라지고 색감만 희미하게 남은 인달라는 세상의 경전을 포개어 쌓는 작업으로 전화했다.

김아타는 인달라 작업을 한 후 2010년부터 ‘온네이처(ONNATURE)’로 나아갔다. 자신이 ‘존재의 감흥을 느낀 곳’에 하얀 캔버스를 세워놓고 자연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강원 숲과 제주 앞바다 등 국내뿐 아니라 노장사상의 발생지인 중국 허난(河南)성, 원폭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廣島) 등 세계 전역이 그 대상이었다.

사진에서 회화로 넘어가며 파천황의 발상을 실천한 것이다. 기존 회화에서 캔버스는 작품을 받쳐주는 역할에 그쳤으나 그의 예술에서는 ‘의미’로서 역할을 한다. 비, 눈, 바람, 햇볕을 모두 받아 안아서 작품을 만든다. 땅속에서는 박테리아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고, 바닷물에서는 조개껍데기나 해초류와 함께한다.

김아타는 “캔버스는 상처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는데, 부처가 출가한 인도 부다가야의 캔버스가 가장 많이 상해 있었다”며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미국 뉴멕시코의 샌타페이 화면이 맑았던 것은, 인디언 거주지라서 그들의 영혼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자연하다’가 환경, 생태미술 범주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임을 헤아리게 한다. 모란미술관이 전시회와 함께 발간한 책 ‘자연하다’에는 철학과 미학, 역사 등을 넘나드는 작가의 웅숭깊은 사유가 녹아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대포(大砲)가 그린 그림’도 소개한다. 전방 군부대 사격장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포를 쏜 후 갈기갈기 찢긴 천 조각들을 수습해 소독과 색 작업 등을 거쳐서 만든 것들이다. 국방부 허락을 받기도 힘들었고 작업 과정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던 프로젝트를 기어이 수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의 야만 역사도 자연의 일부로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철저히 고독하게 진행됐다. 자신과 가깝게 지냈던 화랑들이 상업적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자, 작가는 세간의 평이나 전시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에만 골몰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모란미술관에서 작업의 고갱이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연수 모란미술관장께서 오래전부터 제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거기에 감동을 했는데, 이렇게 초대해 주시니 기꺼이 응한 것이지요.”

모란미술관은 조각 전문 뮤지엄으로 우리 미술계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작년에 30주년 행사를 치른 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야외 조각을 재배치하고 실내 전시장도 대대적으로 바꿨다. 새로운 30년을 시작하며 재개관전으로 ‘자연하다’를 택한 것과 관련, 이 관장은 “김아타 선생의 작품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데, 자연을 활용한 빛의 조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에 모란미술관 야외조각장 한편에 캔버스를 세우고 ‘모란하다’로 이름을 붙였다. 2년 동안 자연이 그림을 그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미술관이 모란공원묘지를 옆에 두고 있는데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이라는 작품 주제와도 맞닿아 있어 절묘하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자연하다’의 이전 프로젝트인 ‘온 에어(ON AIR)’ 연작도 보여준다. 불경의 글자를 포개어 쌓은 ‘반야심경’과 얼음으로 만든 부처를 촬영한 ‘아이스 붓다’가 그것이다. ‘아이스 붓다’는 모란미술관 내 폐사찰인 백련사 대웅전 수미단 자리에 설치했다. “야외에 두면 변색해서 원화를 훼손하지만, 이번 전시에 찾아오는 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것이 작가 설명이다.

그는 “저에게 이제 사진 작업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며 “계속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사진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경기 여주의 자택 겸 작업실인 ‘아르테논(Art+Parthenon)’에 새 건물을 짓는데, 그 터가 되는 과수원의 복숭아나무 150그루의 꽃을 최근 일일이 촬영했다. 15m짜리 작품 ‘무릉도원’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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