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전두환 "광주는 폭동" 5.18 민주화 운동 책임회피 '공분' [어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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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사과 한 마디 없었던 원흉의 책임회피가 공분을 자아냈다.
5월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돌아봤다.
그 비디오테이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을 찍은 외신들의 보도가 담겨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은 "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국민을 총칼로 죽여 놓고 본인은 책임회피를 하나. 지금도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가슴 아프다"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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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사과 한 마디 없었던 원흉의 책임회피가 공분을 자아냈다.
5월 1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돌아봤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가 비상사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군이 국가를 통제했고 12.12 사태로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아닌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실권을 잡았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졌고 그 중심은 대학가였다. 계엄령을 철폐하고 전두환을 퇴진하라는 민주화 열망이 일어났다.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명분은 혼란을 틈타 북한이 침략하리라는 것. 그렇다면 군대를 최전방으로 보내야 했지만 우리 군대는 후방으로 이동했다. 시위하는 학생들을 잡으러. 시위는 광주만 빼고 소강상태가 됐다.
1980년 5월 18일 공수부대가 광주로 추가 배치됐다. 공수부대는 최정예 특수부대. 시위 진압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광주에서는 길거리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을 살해하는 살육이 벌어졌지만 타 지역에서는 실상을 알지 못했다. 철저한 언론통제가 이뤄졌기 때문.
국내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체가 알려진 것은 7년이 지난 1987년 여름 장용주 신부가 독일 정부의 도움을 받아 외교행낭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들여온 덕분이었다. 그 비디오테이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현장을 찍은 외신들의 보도가 담겨 있었다. 장용주 신부는 비디오테이프를 약 1천개 복사 전국 성당에 보내 진실을 알렸다.
그 비디오테이프가 퍼져 국회까지 진출, 1988년 청문회가 열렸다. 계엄군 수뇌부가 줄줄이 출석했지만 발포가 있었다는 사실에도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 군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총을 쐈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그러니까 계엄군이기 때문에 진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였고 보안사령관이었다. 보안사만 지휘하지 지휘권이 없다. 그걸 진압하고 내가 대통령이 됐다는데 되도 않는 소리다”고 말했다.
이야기 친구 휘인은 “떳떳한 말투다”며 황당해 했고 송영규는 “국민 기만하는 소리만 하고 있다. 책임 전가만 한다”고 탄식했다.
5.18 특별법 제정 전두환은 무기징역 형을 받았지만 수감 후 2년 만에 특별사면 됐다. 당시 명분은 국민통합. 이후 2021년 사망하기까지 전두환은 단 한마디의 사죄나 속죄를 하지 않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은 “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국민을 총칼로 죽여 놓고 본인은 책임회피를 하나. 지금도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가슴 아프다”고 분노했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역시 “(전두환이)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역사라는 것을 정리 못하고 죽는 것은 미완의 과제로 남는 거다. 그 사람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았다. 한 사람 인생이 아니라 한 가정이 무너졌다. 그 사람으로 인해서”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당시 광주에서는 시민 274명 사망, 3700명 부상. 계엄군 23명 사망, 115명 부상. 여기에 신고된 행방불명자만 400명, 공식 인정된 행방불명자는 78명이었다. 행방불명된 가족을 여전히 찾는 이들에게 사건은 현재 진행형. 가족을 잃은 유족들도 “5.18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뉴스엔 유경상 기자]뉴스엔 유경상 y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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