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장기이식 연결, 3D 그래픽..이게 다 수학 덕이라니!
첨단기술로 진화하는 과정 소개
"수학은 여러 문제의 포괄적 해결책"
수학의 이유
수학은 현대 사회를 어떻게 지탱하는가
이언 스튜어트 지음, 김성훈 옮김 l 반니 l 1만9800원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에서 파도가 기분 좋게 당신의 배에 와서 부딪히나요? 수학입니다. <콜 오브 듀티: 고스트>에서 당신의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니나요? 수학입니다. 소닉이 아주 빠르게 달리고 마리오가 점프를 한다고요? 수학입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는 2016년 10월 ‘이것이 슈퍼마리오 뒤에 있는 수학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기사는 비디오게임 한 편 제작하는 데 이산수학, 선형대수학, 응용수학, 삼각법, 벡터 등등 수많은 수학의 종류와 원리가 들어가 있음을 알려준다. 당연히 비디오게임만의 경우가 아니다. 피시(PC)와 휴대전화, 지하철과 자동차, 우주 여행과 은행 업무까지 컴퓨터 알고리즘이 없으면 작동 불가능하고 이 기술의 밑바탕에는 수학이 깔려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막연하게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수학은 여전히 멀고도 멀다. 중고등 시절 사인과 코사인, 지수·로그와 미적분도 배웠건만 흘려 쓴 엑스(x), 와이(y)를 보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수학 따위는 내던지고 비디오게임의 버튼만 누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오랫동안 이러한 ‘수포자’들에게 수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려주는 책들을 집필해왔다. 이번에 나온 <수학의 이용>은 수학의 효용성에 대해서 기술한다. 수학 대중화에 평생 헌신한 학자답게 그가 이번 책에서 수포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고심한 방법은 일종의 ‘나비효과’다. 수학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쓰잘데기없는’ 어떤 문제에 밤낮을 매달려 풀고 나서 혼자 좋아하는 ‘너드’ 같은 과거 수학자들의 발견이 어떤 발전 경로를 거쳐 지금의 최첨단 과학기술로 “터무니없는 효용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한 예로 오일러의 ‘쾨니히스베르크 7개 다리 건너기’가 현대의학의 장기기증 매칭 효율 극대화 전략을 낳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붓그리기’로도 알려진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는 오일러가 해결한 수많은 문제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다. 18세기 프러시아의 이 도시(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는 2개의 섬과 이를 잇는 7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들을 모두 한번씩만 건너면서 두 섬을 통과해 도시를 가로질러 올 수 있는가의 문제다. 천재 수학자 오일러는 이 다리 퍼즐에 빠져들었고 정확한 수학 방정식으로 공식화한 뒤에 그런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경로를 찾아낸 것도 아니고 없다고 답한 게 무슨 대수라고! 하면서 수포자들은 넘어가겠지만 오일러는 다리와 섬이 수천개씩 연결된 복잡한 구조라도 각 섬(점)에 연결된 다리(선) 개수가 모두 짝수이거나 홀수가 2개만 있으면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다는 오일러의 정리를 도출했다. 이 정리는 선으로 연결한 점의 집합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개념의 ‘그래프 이론’의 초석이 됐다. 그리고 후세 수학자들이 100년 넘게 발전시킨 그래프 이론은 “콩팥 기증자와 수혜자를 연결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열어주었다”.
신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 가족들은 기증을 하고 싶어도 조직형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포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만약 아픈 딸의 신장이 이웃집 건강한 언니의 것과 맞고, 언니의 아픈 아빠 신장이 내 것과 맞는다면 맞교환 방식으로 이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증자와 수혜자가 매칭될 수 있도록 ‘조합 최적화’를 찾아내는 데 그래프 이론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따라서 오일러의 300년 전 단순한 호기심이 지금의 장기이식 매칭 전략을 이끌어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비디오게임과 애니메이션의 3차원 그래픽 시조는 19세기 초 아일랜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학 신동으로 대학생 때 교수가 된 윌리엄 해밀턴은 실수와 허수로 구성된 복소수의 개념이 미분 방정식을 푸는 데 효과적이지만 이게 2차원 공간에서만 적용된다는 데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3차원에서도 풀이가 가능한 ‘슈퍼 복소수’를 찾는 데 “집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4차원 개념을 끌어들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원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140년이 지난 1985년 ‘사원수 곡선을 이용한 회전 운동 애니메이션’이라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해밀턴은 전세계 어린이들과 픽사(최초의 전체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제작사)에 기쁨을 선사하는 인물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러한 천재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열정이 늘 순탄한 진화 궤도를 탄 건 아니다. 해밀턴만 해도 생전에 사원수의 가치를 이해받지 못했다. 새로운 수학적 개념이 등장했을 때 경기를 일으키는 건 평범한 수포자들만은 아닌 듯하다. 1890년 이탈리아 수학자 주세페 페아노가 정사각형의 내부를 완벽하게 채우는 곡선의 구성물을 만들어냈을 때 “많은 수학자가 마치 몹쓸 병이라도 되는 듯” 반응하면서 “두려움과 혐오감을 드러냈다”. 수천년 이어져온 “선은 두께가 없는 도형이다”라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아노 곡선은 프랙털 기하학의 초창기 사례로 평가받으면서 현대 수학의 발전에 흡수됐다. 저자는 음수(negative number), 무리수(irrational number) 등 수학 역사에서 발견된 새로운 수 개념이 부정적인 이름을 얻게 된 데는 이러한 수학자들의 거부감이 반영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로 전해지는 경구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우는 여러가지를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아주 큰 것을 하나 알고 있다”. 수학은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인 도구로, 수학자는 고슴도치와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하고 안 하고는 자유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더 가팔라지면서 수학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라는 예측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위상수학 등 이 책이 설명하는 현대 수학의 개념들을 비전공자가 술술 이해하기는 녹록지가 않다. 버겁게 느껴진다면 수학적 원리 부분은 슬쩍슬쩍 넘어가면서 수학의 역사책으로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삼각김밥, 조각치킨도 손떨리네…‘혜자스럽던’ 편의점 너마저
- “아이 챙기고 매끼 차리고, 함께 재택하는 남편은 설거지만”
- [ESC] 소주 오픈런 해봤나요? 마실 땐 우아하게
- 툭하면 급가속에 과속…사고운전자, 위험운전 1.5배 많다
- “한덕수, 자식도 없어…받은 혜택 사회 환원 약속”…국힘의 읍소
- 키가 크면 금리인상 한다는데…190㎝ 넘는 이창용 총재는?
- [속보] 확진 2만5125명…확진자 ‘7일 격리 의무’ 4주 연장
- 고민정 “김건희 소환할 거냐”…한동훈 “수사 방식은 여러 가지”
- 미국에 백지수표는 주지 마라 [특파원 칼럼]
- 미 “한-미-일 군사훈련 참가를”…윤 정부 “합의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