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호사스러운 말 뒤에 있는 것

한겨레 2022. 5. 20.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천군수로 있던 그는 경상도 감영에 백성들을 구휼할 곡식 1천석을 요청했다.

그는 5백석을 실제 백성들의 구휼에 썼고 나머지 5백석은 백성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는 5백석을 1천석으로 부풀려 빌려주었던 것이다.

희한하게도 그의 아버지 역시 나주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환곡 2만 석을 가분(加分)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상도 예천군으로 귀양을 간 적이 있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명관의 고금유사][강명관의 고금유사]

청나라 시대 문인 엄성(嚴誠)이 그린 홍대용.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천군수로 있던 그는 경상도 감영에 백성들을 구휼할 곡식 1천석을 요청했다. 관찰사 이병모(李秉模)는 선선히 허락했다. 그는 5백석을 실제 백성들의 구휼에 썼고 나머지 5백석은 백성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런데 빌려준 5백석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5백석을 1천석으로 부풀려 빌려주었던 것이다.

5백석을 어떻게 배로 늘렸는지 알 수는 없으나 요지는 간명했다. 2석을 갚는 조건으로 1석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집에 다녀온 뒤 그가 빌려준 곡식을 받으려 하자 백성들은 완강히 버텼다. 1석만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와 백성들 사이에 불거진 갈등은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결국은 관찰사에게도 보고되었다. 고민 끝에 휴가를 얻어 다시 서울 집으로 갔다. 임지로 복귀하라는 정조의 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머니 병을 핑계 대며 영천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얼마 뒤 그는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빌려준 곡식 문제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이라 하였다.

희한하게도 그의 아버지 역시 나주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환곡 2만 석을 가분(加分)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상도 예천군으로 귀양을 간 적이 있었다. 가분은 규정된 수량을 초과하여 환곡을 대출해 주는 것을 말한다. 춘궁기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가 빌려주는 환곡은 원래 이자가 없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출납 과정에서 곡식이 줄어드는 것을 구실로 ‘모곡(耗穀)’이란 이름의 이자를 받기 시작했다. 모곡은 이내 큰 문제가 된다. 지방관들은 규정을 넘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환곡을 강제로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착복했던 것이다. 지방관들이 백성을 쥐어짜 제 주머니를 불리는 방법이었다.

그와 그의 아버지는 모두 관직에 있으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를 하고자 했던 것인데, 그게 집안의 내력이었던지 비슷한 일이 그의 숙부에게도 있었다. 그의 숙부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목화 농사가 3년 내리 흉작이었는데 경상도만은 수확할 것이 있었다. 관찰사는 즉각 다른 지방 상인들이 경상도로 들어와 목화를 사 가지고 가는 것을 막았다. 그런 뒤 자기 돈으로 목화를 사들였다. 호남의 솜 값이 폭등했다. 정조는 충주부터 서울까지 장차 옷가지가 없어 추위에도 몸을 가릴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라고 화를 내었다. 관찰사의 의도는 빤했다. 사들인 목화를 팔아 한몫을 보려는 심산이었다. 정조는 관찰사를 파직했다. 관찰사를 잘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집안은 원래 부자인데 이런 염치없는 짓을 하다니, 그의 조카를 위해 애석하게 생각한다.”

그는 누구인가? 홍대용(洪大容)이다. 그의 아버지는 홍역(洪櫟), 숙부는 홍억(洪檍)이다. 홍대용 가문은 정통 노론의 본류로서 이름난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다. 20세기 이후 한국사회가 홍대용이란 이름 앞에 붙인 ‘지전설을 주장한 실학자’란 수식어를 벗겨내면 지배계급의 일원이었던 홍대용 가문의 실체가 드러난다. 위에서 예시한 관직을 수단으로 백성을 쥐어짜고자 했던 행각은 그 실체의 일부다. 오늘날 한국의 지배계급을 둘러싸고 있는 호사스러운 말을 걷어내면 그 뒤에 무엇이 있을까? 최근 인사청문회를 본 소감이다.

인문학 연구자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