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전각] 솔개 날고 물고기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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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날아오를 듯한 새 한 마리를 ‘날 비(飛)’ 자가 떠받치고, 수직으로 곧추선 물고기 밑엔 뛰어오를 ‘약(躍)’ 자를 새겼다.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만물이 약동하는 세상을 빗댄 말이다. ‘시경’의 ‘대아(大雅)’ 편에 나온다.
20세기 후반 대표적 전각가로 꼽히는 청사(晴斯) 안광석(1917~2004) 작품이다. 붉은빛 선연한 인영(印影)은 한 점 그림 같다. 인영은 도장을 찍은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문헌 연구자 석한남이 쓴 ‘전각, 세상을 담다’(광장)는 점점 잊혀가는 ‘전각’의 예술 세계를 되살리는 책이다. 건축가 김원(79)이 소장한 청사와 운여(雲如) 김광업(1906~1976)의 인보(印譜·인영을 모은 책) 중 전각 150여 점의 글귀 출전을 하나하나 찾고 쉬운 말로 풀었다.
청사와 운여는 해방과 6·25 무렵부터 부산을 무대로 활약한 전각·서예가다. 청사는 위창 오세창 문하에서 수학하고 중국 서예 대가 동작빈(董作賓)에게 갑골문을 배웠다. 청사는 1996년 평생 만든 전각 920점을 포함한 소장품 1027점을 연세대에 기증했다.
평양 출신인 운여는 건축가 김중업의 형이자 안과 의사였다.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안과를 개업한 운여는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왔다. 진료를 하면서 한편에 작업실을 만들어 평생 몇 가마니 분량 전각을 새겼다. 운여는 1955년 청남 오제봉과 동명서화원을 개설해 부산 서화계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현직 의사인 운여는 교회 장로이면서 승려 출신인 청사, 청남과 어울린 별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2003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운여 김광업의 문자반야 세계’ 유작전이 열릴 만큼 인정받는 작가였다. 서체도 개성적이지만 활기 없이 머리를 떨군 말을 새겨 말띠인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작품은 보는 이를 애처롭게 한다.
부산 출신인 김원이 청사와 운여 작품을 소장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김원의 어머니 김모니카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이었다. 남편과 함께 지역 예술가들을 돕는 후원자였다. 지인들과 ‘병풍계’를 만들어 서화가들의 병풍을 구입하는 등 전후 부산의 화가·서예가들을 돕는 데 앞장섰다. 청사, 청남 등 반짝이는 별 같은 예술가들이 이 집을 드나들었다.
김원은 이런 인연으로 두 폭 병풍(가리개)에 담은 청사의 인영, 그리고 청사가 엮은 운여의 인보 ’여인존(如印存)’을 소장하게 됐다. 김원은 “전쟁으로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부산을 터전 삼은 예술가들의 생활과 창작 활동의 편린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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