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7] 재건(再建), 아우프헤벤(Aufh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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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가 35번 등장했다고 해서 화제다. 대통령 본인의 철학을 반영해 직접 다듬은 내용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 외에도 ‘재건’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취지였는데, 5·16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오버랩되면서 묘한 울림을 남기는 단어 선택이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아우후헤벤(アウフヘーベン)’이라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都)지사가 도심 수산 시장 이전 문제, 신당 창당 문제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을 아우후헤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이 말이 포털 검색어 1위가 되고 올해의 유행어 후보가 되는 등 삽시간에 대중에게 널리 퍼진 것이다.
사실 이 말이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사람들이 아우후헤벤이 무슨 뜻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우후헤벤은 독일어 아우프헤벤(aufheben)의 일본식 발음이다. 본래 ‘들어 올리다(up-lift)’의 뜻이지만, 헤겔이 변증법의 ‘정·반·합’ 중에 ‘합(合)’을 아우프헤벤으로 명명하면서 철학적 의미를 갖는 말로 재탄생하였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면 기본 명제인 정(正)과 그 부정인 반(反) 중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선별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시키는 것이 아우프헤벤이다. 고이케 지사의 발언은 대중이 헤겔 철학의 의미를 다시금 음미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정치의 말은 시대성과 당위성을 갖추어야 대중을 설득해 현실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자유, 인권, 정의, 공정 같은 정치 언어가 망가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그 이전 시절이 재건 대상인가 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좋건 싫건 지나간 일을 거울 삼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가 당면한 과제일 것이다. 한국 정치야말로 아우프헤벤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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