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공시생이 본 검수완박
일명 ‘먹고사니즘’의 시선의 예리함에 놀랄 때가 있다. 눈앞 생계만 좇는 줄 알았던 이 시선이 때로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최근 가입자 92만명이 넘는 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모임 카페에서 뜻밖의 단어를 발견했을 때가 그랬다. 요즘 이곳 최고의 화제어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이 카페에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가 정확히 반씩 모여 있어 정치 주제 싸움을 자주 벌여서가 아니다. 이들에겐 국회에서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에 대한 분개나 ‘처럼회’ 의원들이 핏대 세워가며 외치던 검찰 공화국 개혁 명분은 당장 관심사가 아니다.
대신 ‘생계’의 이유로 줄어들 자리와 늘어날 자리를 걱정하고 기대할 뿐이다. 앞으로 검수완박으로 검찰 일은 줄고 경찰 일은 늘 테니, 자연히 검찰 수사관 인원은 줄고, 경찰 수사관 인원은 늘 거란 것이다. 나는 이것만 떼놓고 보면 당연히 후자를 기대한 경찰공시생들이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조차 검수완박법 통과 소식에 침울해하고, 심지어 화까지 내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 합격 정원은 늘겠지만 시험 범위가 바뀌니 마냥 좋진 않다는 이유였다.
9월 시행되는 검수완박법의 핵심은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으로 검찰 수사 범위를 확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9급 경찰공무원 등 시험 범위에 이 형소법이 들어있다. 당장 수험생들은 내년 시험부터 형소법 공부를 달리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학원가도 이를 정조준한 상품을 발 빠르게 내놨다. 마치 이런 일이 생길 거란 걸 미리 들여다본 것 같은 그들의 속도와 꼼꼼함을 보고 있자니 이걸 국회가 반만 닮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험생들의 먹고사니즘 걱정은 ‘워라밸 문제’로까지 번진다. 주로 경찰공시생의 걱정이 컸다. 지금도 경찰 담당 사건 숫자가 적지 않은데, 검찰 수사권까지 넘어오면 ‘저녁 있는 삶’은 꿈도 꾸기 어렵단 것이다. 국회에 계신 분들이 보면 우린 나라 명운이 걸린 법안을 두고 싸우고 있는데 이 무슨 ‘웃픈’ 고민이냐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먹고사니즘은 현재 경찰 조직이 검수완박을 바라보는 고민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최근 경찰청이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안의 인건비는 10조148억원. 전년보다 6552억원이 늘었다. 반면 사업비는 올해보다 373억원(1.5%) 줄었다. 검수완박을 대비해 인력 채용을 늘리겠단 수로 읽히지만, 사실상 큰 변화가 없어 수사관 1명이 담당할 사건이 3배 가까이 늘어날 거란 전망이란다.
국회에선 ‘서민을 위한 수사’를 더 잘하게 하겠다며 검수완박법이 통과됐지만, 정작 현실은 ‘일손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부실한 수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과 경찰 조직이 사회 초년생 공시생보다도 계획력이 떨어져 생긴 문제인 걸까. 잠시 고민하던 중, 한 경찰공시생의 글을 보고 또 다른 가능성을 깨쳐 무릎을 탁 쳤다. “내 취업, 내 이득 생각하면 경찰 조직이 커지는 거니 검수완박 빨리 됐으면 합니다. 그런데 한 국민으로서는 반대합니다.” 역시 먹고사니즘의 시선은 생각보다 더 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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