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親美' 콜롬비아마저 좌파 집권 초읽기

정지섭 기자 2022. 5.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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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권으로 물드는 중남미
29일 대선 치르는 콜롬비아, 좌파 후보 지지율이 거의 2배
10월 브라질도 '좌파' 룰라 유력
美 주도 내달 LA 미주정상회의 상당수 정상들 보이콧 움직임

남미 콜롬비아의 좌파 무장단체 민족해방군(ELN)이 오는 29일 실시하는 대선을 전후해 열흘 동안 대정부 무장투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근현대 콜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쏟아지면서 좌파 진영에서 이번 선거를 무사히 치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콜롬비아만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콜롬비아에 좌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 중남미 전역에서 핑크 타이드(pink tide·중남미 좌파 열풍)가 더욱 세를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알 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대선을 약 10일 앞둔 상황에서 콜롬비아 좌파 민중당의 구스타보 페트로(62)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40% 중반대 지지율로 20%대에 머물고 있는 우파 연합의 페데리코 구티에레스(48) 후보를 멀찍이 앞서고 있다. 1980년대 좌익 게릴라 단체 M-19 대원으로 활동했던 페트로는 정치에 입문한 뒤 수도 보고타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우파 진영의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가 코로나 봉쇄에 따른 경기 침체와 치안 악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 악재로 인기가 급락하면서 강력한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페트로 후보는 29일 투표에서 1위가 유력하지만, 과반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2위와 결선투표를 치러야 한다. 그는 보수 표심이 결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과격한 이미지를 없애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선 “내가 대통령이 돼도 사유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면 그간 콜롬비아가 한 세기 이상 유지해온 대외 정책의 근간이 바뀔 전망이다. 그는 무상 고등교육과 실업자 일자리 제공, 가스와 원유 신규 탐사 중단 등을 공약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페트로가 집권할 경우 자국 내 마약 조직을 상대로 미국과 벌여온 합동 소탕 작전의 중단을 검토하고,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관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인구(약 5050만명)가 브라질에 이어 둘째로 많다. 면적(한반도의 약 5배)은 넷째로 넓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파나마가 과거 콜롬비아의 일부였다.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모두 접해있고, 석탄·니켈·에메랄드 등을 수출하는 자원 부국이다. 정파 간 정권 교체가 활발했던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와 달리 지금까지 이 나라 현대사에서 좌파가 집권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중남미 내 미국의 최대 우방이자 ‘우파의 보루’로 꼽혀왔다.

콜롬비아 대선은 중남미 전체의 ‘이념 지도’ 변경에도 큰 의미를 갖게 될 전망이다. 콜롬비아에 이어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유력 주자 룰라 다 시우바(77)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페루 등과 함께 중남미 대국(大國)에서 모두 좌파가 집권하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진다. 반미, 좌파 정권이 장악한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핑크 타이드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거침없는 핑크 타이드의 기세는 전통적으로 이곳을 ‘뒷마당’으로 여겨온 미국의 영향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9차 미주정상회의가 각국 정상들의 보이콧으로 빛바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미와 중남미 국가 정상들이 모두 참여하는 이 회의는 1차 회의(1994년 마이애미) 이후 두 번째로 미국에서 열린다. 그런데 미국이 그간 독재와 인권 탄압 등을 문제 삼아 ‘폭정의 트로이카’라고 비난해온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3국 정상을 초청 대상에서 제외하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 등 좌파 지도자들이 미국의 방침을 공개 비판하며 불참 방침을 밝혀 ‘반쪽 회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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