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의 세상현미경] 푸틴, 리더의 함정에 빠지다

국제신문 2022. 5.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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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경제 역시 혼란에 빠졌다. 전쟁과 아무 상관 없는 나라도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글로벌 최상위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이 혼란스러우니 그렇지 않은 나라들의 형편은 물어볼 것도 없다. 한국도 몸살을 앓고 있다. 도대체 러시아는 무슨 마음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을까? 우크라이나와의 오랜 긴장 관계가 도화선이 됐지만, 실제적으로는 푸틴의 오판이 원인이다. 왜 푸틴은 오판하게 됐을까? ‘리더의 함정’에 답이 있다. 그는 적어도 세 가지 함정에 빠졌다.

첫 번째가 우두머리 수컷(Alpha male) 함정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컷이 있다. 이들은 무리를 지배하면서 모든 무리를 자신에게 복속시키려 한다. 동물 세계의 이런 행동이 인간 세상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우두머리 수컷 신드롬’이라고 한다. 푸틴이 이 함정에 빠졌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사흘 전 그가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큰 홀의 한쪽 끝 책상에 푸틴이 앉아 있었고 30명의 다른 참석자들은 맞은편 한쪽에 멀찍이 떨어져 몰려 앉아 있었다. 얼마나 멀던지 푸틴은 마이크로 이야기해야 했다. 황제가 충성스런 신하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비슷한 사진이 또 공개됐다. 침공 3일째 푸틴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자리를 했다. 푸틴과 이들 사이에는 책상 5개 폭의 거리가 있었고 그 끝에 푸틴은 큰 책상에 앉아 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푸틴을 측면으로 보는 책상에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푸틴이 코로나를 무서워해서 그랬다지만 이들 사진은 푸틴의 우두머리 수컷 기질을 잘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푸틴의 기질과 무관치 않다. 그는 전 세계를 향해서도 자신이 우두머리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크라이나와의 군사력 차이는 그의 이런 태도를 더 공고히 해줬다. 러시아는 2위의 군사 대국인 반면 우크라이나는 22위였으니,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도는 쉽게 거덜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만 되면 전 세계가 자신을 우두머리로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성공 함정이다. 한두 번의 성공경험으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푸틴의 오판 역시 그의 성공경험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크름(크림)반도 병합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공격해 병합했다. 공격에 가담한 군인들은 어떤 휘장도 없는, 심지어 이름이나 계급장도 달지 않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을 그린 맨(green man)이라고 한다. 이런 전략으로 서방세계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푸틴은 크름반도 병합에 성공한다. 나중에야 러시아의 침공임을 안 서방세계가 제재에 돌입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다른 사건도 있었다. 같은 해 말레이시아항공 17편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중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제 버크 미사일의 공격을 받아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러시아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잡아떼었고 사건 규명은 지지부진했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푸틴은 자신이 불장난을 해도 국제사회가 별로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음을 경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이런 경험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세 번째는 근거리 탐색 함정이다. 가까운 사람에게만 의존해 정보를 얻는 것을 말한다. 영국 BBC는 푸틴은 중대한 의사결정 시 주변 측근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인다고 보도했다. 주로 어린 시절 친구이거나 푸틴이 몸담았던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들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공격에 대한 푸틴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 불리한 전황이나 서방 제재로 인한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정보는 흘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오판하고 있었다.

푸틴만 이런 함정에 빠질까? 아니다. 많은 리더가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합리적 생각이 아닌 우두머리의 자존심을 세우는 방향으로 매사를 결정하게 된다. 한두 번의 성공에 취해 자신을 성공의 화신으로 착각하면서 아무 일이나 덜컥덜컥 벌린다. 자신에게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만 귀 기울이다 보니 현실성 없는 결정을 하게 된다. 지혜로운 리더는 이것을 경계한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 아닌 국가와 조직을 잘 되게 하기 위한 결정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 중요한 결정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이걸 막기 위해 원거리 탐색에 시간을 쏟는다. 가까운 주변인뿐만 아니라 친소 관계가 적은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을 말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지혜로운 리더가 있었던 국가나 조직은 강성했지만, 그렇지 않은 리더가 있던 국가나 조직은 피폐했다는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리더보다 그렇지 않은 리더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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