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찔레꽃
[경향신문]
화사한 벚꽃이 지고 나면 복숭아꽃이나 자두꽃이 뒤를 따른다. 이어서 아카시아나 찔레꽃이 피기 시작한다. 신록이 짙어지면 산들거리는 바람을 따라 하얀 꽃들이 그 청아함을 드러내면서 향기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나는 코로나 감염으로 앓고 나서는 아직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아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오직 그 향기는 내가 품었던 감각의 기억일 뿐이다. 숲길에서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을 따라와서 야외 학습을 하고 있다. 선생님은 찔레 순을 따서 껍질을 벗긴 뒤에 씹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찔레꽃이야. 이렇게 먹을 수도 있어. 선생님이 찔레꽃 노래도 불러주었지?” 아이들은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 하고 합창하듯 대답했다. 장사익의 찔레꽃은 생각이 나는데 또 다른 동요가 있었나? 아, 그렇지. ‘하얀 저고리 하얀 머리 할머니 찔레꽃 닮았어요. 가시덩굴 가지에서 피는 눈부신 꽃이지요.’
다른 찔레꽃 가요는 여러 가수들이 불러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불러오기도 했다. 찔레꽃을 보고 있노라면 유년 시절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백상여를 따르는 하얀 만장의 깃발이 떠오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애틋함과 이제는 나이가 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났어도 그리운 마음은 하나의 표상으로 매년 찔레꽃으로 다가선다. “지비(당신)는 속이 없는 사람이여, 왜 그리 쓸데없는 짓만 하고 댕기는 거여”라고 말하던 이미 고인이 된 계남마을의 장암할머니도 생각난다. 그 “쓸데없는 짓”을 입 밖으로 내서 나를 돌아보게 하던 그이의 말속에서 우리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함께 쓸데없이 늙어가는 나의 행위를 보게 된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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