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2] 임을 위한 행진곡

신수진 예술 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2022. 5.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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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광주 망월동, 1991

인간은 오늘만을 사는 숙명을 지녔음에도 역사를 말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오늘이 모두의 역사가 되는 시간을 우리는 매일 경험한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내일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지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이 얼마나 많은 기억의 층위를 소환하는지에 따라 역사성을 논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과거를 향해 많은 연결 고리를 지닌다. 시간을 넘나드는 연결성이 기억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고 낯선 오늘을 역사로 자리 잡게 한다. 보수 정당 대통령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유가족들과 양손을 이어 잡고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장면은 수많은 시간의 층위를 소환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망자의 영정 사진, 흰 조화(弔花)와 길게 자란 풀, 그 앞에 엎드려 겨우 고개를 든 카메라. 5·18 그날부터 11년 후에 찍힌 이 사진 속에서, 하늘마저 무겁게 내려앉을 것만 같은 어둠으로 작가는 그날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다. 사진가 이상일(66)은 1980년 그날의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충격적인 장면들이 그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을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희생자들의 묘역을 찾고 또 찾은 시간의 기록이 ‘망월동(1984~2000)’ 연작으로 남아 고통스러운 기억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사진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선명하다. 40년을 훌쩍 넘긴 시간을 관통하는 아픔이 지금도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은 자이고, 그래서 이 사진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언제나 새로우니 ‘최초’라는 수식어는 진부하다. 이제 막 시작한 새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 바라는 건 그저 하나다. 갈등과 후회의 시간이 반복되지 않기를, 그리하여 내일 우리가 기억하게 될 오늘이 모두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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