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판 커진 ‘망이용료’ 분쟁에 숨죽인 새 정부

김봉기 산업부 차장 2022. 5.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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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넷플릭스 계기로 촉발
유럽 가세하며 ‘빅테크’로 확대
美, 우려 표명 등 본격 맞대응
말 아끼는 우리 정부와 대조적
구글,넷플릭스,페이스북 등 모바일 앱 로고./REUTERS

국내 망(網) 이용료 문제로 시작된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다툼이 이제 넷플릭스뿐 아니라 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의 망 이용료 이슈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 여야 의원들이 막대한 양의 온라인 데이터를 소모하는 IT 기업에 의무적으로 망 이용료를 내도록 하는 취지의 법안들을 발의하자, 최근 유럽에서도 망 비용을 분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빅테크들의 각국 망 인프라 ‘무임승차’ 논란이 그 쟁점이다.

한국만 해도 네이버·카카오와 국내 기업들은 매년 통신업체에 1000억원 안팎의 망 이용료를 부담한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매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구글·넷플릭스는 통신업체에 망 이용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 4분기 주요 IT 기업들의 하루 평균 데이터 트래픽을 측정한 결과, 미국 빅테크 3사인 구글, 넷플릭스, 메타가 국내 전체 데이터 트래픽의 약 38%를 차지한 데 반해, 네이버와 카카오는 3.3%에 불과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하루 평균 국내 이용자가 총 8090만명으로, 빅테크 3사(5995만명)보다 휠씬 많았는데도 말이다.

유럽은 더 심각하다. 최근 유럽 통신업계가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 전체 데이터 트래픽의 55% 이상을 미국 빅테크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럽 통신업계의 쌓여가는 불만에 최근 EU 집행위원회도 빅테크들이 망 구축에 기여토록 하는 방안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 망 이용료 이슈는 지난 2020년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서 자신들은 책임질 채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으려고 소송을 낸 데에서 처음 촉발됐다. 넷플릭스는 1심을 패했지만 항소해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여야 의원들이 소위 ‘망 이용료 의무화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들을 발의하고 나섰고, 이 소식이 해외로 알려지면서 유럽까지 가세하는 계기가 됐다.

이와 관련, 미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진원지인 한국에서 본격 나서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3월 말 발간한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망 이용료 의무화)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의 국제 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적시한 데 이어,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에 우려의 내용을 담은 별도 서한을 보냈다. 델 코르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최근 “외국 기업들의 혁신과 투자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했던 미국 측 축하 사절단은 지난 10일 넷플릭스 한국법인의 임직원들을 미 대사관저로 불러 만났다고 한다. 이를 놓고 “한국 국회의 입법 움직임에 부담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우리의 새 정부는 너무 대조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종합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신중한 문제”라면서 구체적 입장을 밝히질 않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질문에 “과기정통부와 협의 중”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의 적극적 대응에 숨을 죽이고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이다. 다가온 한미 정상 회담을 앞두고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망 인프라와 관련된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함께 온라인 데이터양이 기학급수적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묻고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금처럼 기업과 국회에게 맡겨 놓고 그쪽에서 결론이 나오기까지 정부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정부도 내부 조율을 거쳐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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