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는 말한다, 그들이 어떻게 책과 살아왔는지
- 8개국 15개 도시 예술가 32명
- 자신의 아늑한 ‘리딩누크’ 소개
- 책 종류·분류법 등 다양하지만
- 독서 통해 영감 찾는 건 공통점
- 다양한 공간 사진 자료도 풍부
‘리딩 누크(reading nook)’. 독서를 위한 아늑하고 구석진 공간을 말한다. 손만 뻗으면 좋아하는 책들이 있고, 잡히는 대로 한 권 뽑아서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읽고,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도 좋고…. 애서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공간을 원한다.
주거·상업시설은 물론 다양한 생활 양식 제품을 디자인하는 로만 알론소는 자신만의 리딩 누크를 사랑한다. 알론소의 서재에는 책과 레코드가 꽂힌 서가 옆에 낮잠용 침대가 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책을 곁에 두고, 리딩 누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아요. 그 책들을 바라보면서 영감을 얻죠.” 서재에서 그의 디자인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술가의 서재’는 미국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니나 프루덴버거가 8개국 15개 도시에 사는 예술가 32명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이다. ‘그들은 어떻게 책과 함께 살아가는가’라는 부제까지 함께 읽으면 책의 분위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책 서가 서재 전문사진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사진이 많은 책이다. 사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본문을 함께 보며 페이지를 순차적으로 넘기려면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하겠다. 책이 쌓여있는 공간이 아름다울뿐더러, 32명 예술가의 서재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들의 직업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편집자 건축가 등으로 다양하다. 그들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서재이다. 집주인의 관심사나 전문 분야에 따라 서재는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사진에 관한 책이라면 뭐든지 다 있을 것 같은 서재도 있고, 직물에 대한 책으로 가득한 서재도 있다. 예술가마다 책 분류 방법도 다양하다. 십진분류법을 따르거나,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거나, 작가별로 정리하는 건 일반적인 분류방식이다. 색깔에 따라 책을 정리한 서재도 있고, 아예 정리를 하지 않는 예술가도 있다.
완벽한 체계의 분류가 아니라도 책이 어디 있는지 훤히 아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필요한 책을 찾아 집과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다른 책을 발견하는 게 더 재미있다는 예술가도 있다. 이렇게 저마다 개성이 강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작업을 위한 자료와 영감을 모두 책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좋아하는 분야 책을 한 권 한 권 모아 자신의 서가와 서재를 만든 사람들이다.
건축가의 서재 한 곳을 보자. “책을 읽을 때는 마치 다른 뇌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책을 통해서 더 잘 배울 수 있어요.” 미국인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마크 리의 말이다. 그는 건축학부 시절에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모아둔 책을 샀는데, 첫사랑이라 부르며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때부터 33년간 건축 디자인 예술 패션 문학 분야 책을 수집했다. 2만 권 정도의 소장도서 중 70%를 읽었다. 마크 리는 지금도 책을 모으는 중이며, 그의 서가는 진화한다. 단순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크 리의 스타일은 그의 서가에도 반영됐다.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서가에서 뽑아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읽으면 된다.
책에 실은 사진으로 보는 예술가의 서재는 부러울 정도로 멋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서재를 가지게 됐는지, 어떻게 책을 수집했는지 알고 나면 더 멋있게 보인다. 32곳 서재를 돌아보노라면 지적 미학적 감성적인 면을 모두 충족시키는 종이책의 힘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저자 니나 프루덴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서재에 관한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꾸며진 집에 관한 책도 아닙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야 말로 ‘한 사람을 이룬 세계’를 아름답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서재의 주인공은 물론 책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