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비틀스'로 국악 열풍 "다음 목표는 판소리 재해석"

임희윤 기자 2022. 5.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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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6장의 CD에 담은 산조입니다. 제가 이 봉우리(바탕)들을 '완등'하지 않았다면 음악의 골이 이리 깊은 것도 몰랐을 테니까요." 국내 대표적 가야금 연주자인 김일륜 명인(62·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의 이야기다.

"서울새울가야금삼중주단의 캐논처럼 이번엔 비틀스의 곡을 통해 국악 문외한도 한 번만 들으면 가야금에 눈뜨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주변 국악인들의 우려에도 농현(弄絃) 등 국악과 가야금의 진수를 함께 보여주면 된다는 자신감이 그를 나아가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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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짜리 가야금 전집 낸 '琴의 혁신가' 김일륜 명인
"전통 12현 가야금, 번거롭고 음역 한계 뚜렷
잊혀진 '슬' 되살려 1996년 25현으로 개량
그때 BTS 있었다면 다이너마이트 연주했을것"
김일륜 명인은 1985년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수상자다. 최근 정부가 교육과정을 개편하며 국악 비중을 줄이려다 국악인들의 거센 반발로 이를 철회한 데 대해 그는 따끔하게 말했다. “국어를 안 하며 영어만 잘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부터 말살하려 했던 이유가 뭘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와 국어를 가르치는 한 국악 역시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번 전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6장의 CD에 담은 산조입니다. 제가 이 봉우리(바탕)들을 ‘완등’하지 않았다면 음악의 골이 이리 깊은 것도 몰랐을 테니까요.”

국내 대표적 가야금 연주자인 김일륜 명인(62·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의 이야기다. 그가 자신의 가야금 인생을 정리한 열두 장짜리 전집 ‘길’을 최근 내놨다. 국내 음악인이 자신의 연주만으로 이만한 분량의 전집을 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산조, 정악, 가야금 병창, 대금과 이중주, 창작음악을 아우르는 스펙트럼도 광활하다. 산악인으로 치면 히말라야 14좌에 대륙별 고봉준령까지 오른 기록을 생생하게 집대성한 셈이다.

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명인은 “지금 이날치가 각광을 받는 것도 전통을 제대로 알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琴)의 혁신가다. 1996년, 25현 가야금 개량을 주도했다. 이는 전통의 12현, 후대의 22현을 제치고 현재 각종 국악 연주단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악기다. 서울새울가야금삼중주단(1989년 창단)의 일원으로 파헬벨의 캐논을 연주했고 실내악단 ‘어울림’에서는 국악가요를 실험했다. 각종 열차의 종착과 환승 때 들을 수 있는 가야금 버전의 비틀스 메들리로 유명한 숙명가야금연주단을 만들고 지도한 것도 김 명인이다.

“전주에서 태어나 사설 국악원을 운영하시는 부친 아래에서 유치원 대신 국악원을 다니며 자랐지요.”

골 깊은 산조의 세계에 일찌감치 푹 빠졌다. 중학생 때는 테니스 선수를, 고교 시절엔 약대 진학도 꿈꿨지만 결국 금(琴)만큼 그를 알아주는 것은 없었다.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사, 이화여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한 뒤 연주인으로 활동하던 그의 주먹을 뜨겁게 한 것은 1990년대 한중일 3국의 전통음악인이 교류한 ‘오케스트라 아시아’에 합류하면서다.

“12현 가야금은 다른 장르를 연주할 때 곡마다 안족(雁足·줄 받침대)을 옮겨야 해 번거롭고 음역의 한계가 뚜렷했죠. 중국의 구정(古箏·고쟁)도 연구했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중국에서조차 연주법이 잊힌 슬(瑟)에 마음이 갔어요.”

문묘제례악 때 연주하는 시늉이나 하는 데 쓰이던 슬은 가운데 빨간 줄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열두 줄을 배치한 25현 현악기다. 김 명인은 “아름다운 슬을 이 시대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탄생시켜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퓨전 국악 열풍을 일으킨 숙명가야금연주단 창단도 무에서 유를 길어낸 경우. 1998년 숙명여대 전통예술대학원 교수로 임용된 뒤, 이 신설 대학원에 가야금 전공자만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새울가야금삼중주단의 캐논처럼 이번엔 비틀스의 곡을 통해 국악 문외한도 한 번만 들으면 가야금에 눈뜨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주변 국악인들의 우려에도 농현(弄絃) 등 국악과 가야금의 진수를 함께 보여주면 된다는 자신감이 그를 나아가게 했다고.

중앙대로 자리를 옮긴 김 명인은 이곳 학생으로 구성된 중앙가야스트라를 2007년 창단해 이끌고 있다. 가야스트라는 가야금과 오케스트라를 합친 신조어. 여전히 새로운 국악, 미래의 국악을 꿈꾼다.

“만약 숙명가야금연주단 시절에 방탄소년단이 있었다면 ‘Dynamite’를 반드시 연주했을 거예요. 케이팝 아이돌의 트레이닝 과정에 국악 과목이 하나 꼭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야금 산조와 병창에 모두 정통한 그의 목표는 미답의 고봉을 향한다. “판소리를 가야금 병창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의 새 길을 가려 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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