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오르는 배달로봇, 사내 벤처 작품입니다

임경업 기자 2022. 5.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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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부터 금융권까지 육성
현대차 사내 벤처 ‘모빈’의 조선명(왼쪽부터)·정훈·최진 연구원이 지난 4일 경기도 의왕시 현대자동차그룹 의왕연구소에서 자신들이 만든 배달 로봇을 테스트하고 있다. 모빈이 개발 중인 배달 로봇은 특수 제작된 바퀴를 탑재해 아파트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자동차

지난 4일 현대자동차 의왕연구소에 있는 현대차 사내 벤처 ‘모빈’ 사무실. 특수 제작된 바퀴를 단 배달 로봇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로봇 개발에 참여한 최진(34) 연구원은 “평지만 다니는 배달 로봇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접목했다”면서 “올 하반기 편의점 CU와 테스트를 시작해 사업성을 검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원을 포함해 조선명·정훈 연구원까지 모빈의 멤버는 모두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차량 엔진을 개발하던 연구원들이다. 의왕연구소에는 모빈의 바퀴 로봇을 비롯해 전기로 오르막을 오를 수 있는 유모차, 킥보드용 주차장 앱 등 현대차 본업과는 다른 독특한 제품들을 개발 중인 사내 벤처 7팀이 모여 있다. 이들에게는 ‘초기 투자 최대 1억원, 급여 보장과 퇴사 후 3년 내 재입사 가능, 연구·개발비 3억원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졌다. 덕분에 사내 벤처 선정에는 MZ세대 직원들이 몰리면서 매년 경쟁률이 20대1이 넘을 정도다.

기업 사내 벤처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네이버와 삼성전자 등 IT 대기업을 중심을 한 사내 벤처가 식품·금융·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업 안에 숨겨진 아이디어와 젊은 에너지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사내 벤처를 공모하는 방식도 공개 오디션이나 이종 기업과의 협업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사내 벤처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과정도 훨씬 빨라졌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자는 문화가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공모는 ‘쇼미더머니’처럼

CJ제일제당은 지난달 깨진 쌀, 콩비지처럼 식품 가공 때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한 과자 ‘바삭칩’ 구매 예약을 시작했다. 1호 사내 벤처 ‘업사이클링’ 팀이 지난 10월 개발에 착수해 6개월 만에 완성한 제품이다. 통상 1년이 넘게 걸리던 과정을 6개월 넘게 단축했다. 팀원 평균 나이는 31세, 대표 역할은 입사 2년 차 정주희(26) 팀장이다. 정 팀장은 “복잡한 문서 없이 스타트업처럼 결정을 내렸고 사내 보고도 곧바로 임원에게 한 다음 상품화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내 벤처 아이디어 공모와 평가도 MZ세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2012년부터 사내 벤처 제도 ‘C랩’을 운영해온 삼성전자는 최근 사내 온라인에서 인기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쇼미더머니) 방식을 빌린 C랩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전 직원이 사원 복지 몰에서 활용 가능한 10만 포인트를 배정받고, 온라인에서 성공 가능성이 큰 아이디어에 개당 최대 1만 포인트를 베팅한다. 만약 해당 아이디어가 최종 심사를 통과하면 베팅한 포인트의 40%를 추가로 받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내 벤처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기 오디션 심사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주인 의식 불어넣지만, 성공 가능성은 직시해야

최근엔 중견기업과 금융권에서도 사내 벤처가 확산하면서 금융과 IT 등 이종 기업 간의 사내 벤처를 위한 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교육 회사 교원그룹은 1호 사내 벤처 ‘톡크’를 분사해 지난 2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짧은 영상과 그래픽이 함께 나오는 ‘인터랙티브 웹소설’을 서비스한다. 지난 4일 신한은행은 KT와 함께 사내 벤처 공모전을 열어 500개 아이디어 중 10개를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IT 등 다양한 산업을 융합한 아이디어를 찾겠다는 취지다.

기업들은 “사내 벤처 제도가 조직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한 대기업 사내 벤처 관계자는 “사내 벤처를 경험한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로열티와 주인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사업화에 실패해 복귀하더라도 좋은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사내 벤처 컨설팅업체 패스파인더넷 이복연 대표는 “사내 벤처로 상장까지 성공한 회사는 네이버와 오토앤(현대차 사내벤처)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며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물론 성공할 때까지 자금 조달, 인사, 회계 등 모든 분야에서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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