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이었던 기억, 차마 말 못할 아픔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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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전 고성 지역은 북한 땅이었다.
광복 이후 소련 군정을 거쳐 북한 정권의 지배하에 있던 그곳 사람들은 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직전 고성과 원산의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고성 지역은 남한 입장에서 보면 수복지구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소련 군정과 북한의 통치를 겪고 한국전쟁 때 미군이 주둔하는 등 1940∼50년대 불과 10년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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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으로 엇갈린 가족의 비극
광복 후·70년대 남북강원 배경
사라진 순우리말 다채로워 눈길
"말은 또다른 방식의 독립운동"
“내 배 부르자고 다른 것을 죽이는 거는 그럼, 옳은 일이나? 그거야말로 놀부 같은 심보 아니나?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한국전쟁 이전 고성 지역은 북한 땅이었다. 광복 이후 소련 군정을 거쳐 북한 정권의 지배하에 있던 그곳 사람들은 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참전자들은 그날의 참상을 또렷이 기억하지만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다. ‘적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한반도 분단의 현실은 말 못할 아픔이다.
고성 출신 김담 작가가 장편소설 ‘몬순(MONSOON)’을 펴냈다. 몬순은 계절풍, 계절의 징후에 따라 방향을 반대로 바꾸는 바람이다. 김담 작가는 광복 직후 부터 1970년대 독재정권으로 이어지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겪는 개인의 고통을 세대를 교차한 서사로 작품을 그려낸다.
소설은 고성에서 살아온 고성의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다. 한국전쟁 직전 고성과 원산의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고성 지역은 남한 입장에서 보면 수복지구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소련 군정과 북한의 통치를 겪고 한국전쟁 때 미군이 주둔하는 등 1940∼50년대 불과 10년 사이에 큰 변화를 겪었다. ‘나’의 ‘아버지’는 고성에서 원산의 공장에 간 이후 남으로 내려가기를 꿈꾸지만 이념으로 얼룩진 갈등을 겪는다. 인민군에 입대하고 반공 포로로 석방됐으나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족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이력이다. 고성 일대에서는 간첩사건이 종종 벌어졌지만 ‘나’의 가족들은 이것에 대해 쉽사리 말하지 못한다. 이념은 세대를 관통하면서 가족관계마저 복잡하게 옥죄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듯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만나지 못한다. 기약없는 만남을 뒤로 한 남북 사람들만의 운명과 같다.
19일 본지와 유선 인터뷰를 가진 김담 작가는 “주변에 아직도 인민군으로 참전하셨던 분들이 계시지만 자녀 세대에게 말씀을 못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비극이지 않나 싶다”고 했다.
제법 호흡이 긴 소설이라 읽기 쉬운 편은 아니다.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우리말들이 돌부리처럼 툭툭 걸리며 말의 맛을 살려준다. ‘부잇부잇’, ‘맵차다’, ‘찌물쿠다’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저자의 책을 읽기 위해 국어사전을 샀다는 독자도 있을 정도다.
김담 작가는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라진 우리말을 다양하게 쓰기에 가독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쓸 수 없었던 우리말을 지금의 우리가 왜 쓰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다”며 “우리말을 많이 쓸수록 읽는 사람의 심성도 풍부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방식의 독립운동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소설의 결말은 결국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식’으로 귀결된다. 식량 증산과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자연농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 또한 작가가 가진 생태주의적 성향의 반영일 것이다. 인터뷰 말미 기자에게 던진 작가의 말도 이를 대변한다.
“살아야죠, 살아남는 자의 슬픔도 있겠지만 살아서 이야기해야죠. 또 남의 것을 앗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아야죠. 그래서 전쟁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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